(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특집 / 6 삼전도비)
삼전도비(三田渡碑)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비석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패배하여 강화협정을 맺고 청태종 홍타이지의 요구로 인조가 세운 것이다 청제국의 전승비이자 청황제의 송덕비이다 한강변 삼밭나루터에 세워졌다
1392년 이성계는 조선은 건국하고 명나라를 사대하는 채봉국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에서 구원병을 파견했다 광해군은 지는 태양 명나라와 뜨는 태양 후금을 사이에 두교 중립외교를 펼쳤다
인조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명분으로 인조반정을 일으켜서 광해군을 축출하고 정권을 찬탈했다 재조지은은 임진왜란으로 거의 멸망(滅亡)하게 된 조선을 구원(救援)하여 도와준 명나라의 은혜(恩惠)라는 뜻이다
후금은 정묘호란을 일으켜서 인조의 항복을 받고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인조가 맹약을 부인하자 다시 후금은 청나라로 개칭하고 병자호란을 일으켜서 인조의 항복을 받고 군신의 맹약을 맺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9일 만에 항복하고 삼전도에 나와 청태종 홍타이지 앞에 무릎을 꿇고 세 번 절을 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치욕을 당했다 그리고 치욕적인 삼전도비를 세웠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주전파와 주화파는 싸움만 하였다 좌참찬 이경전, 공조판서 장유, 예조참판 조희일 등은 항복문서를 쓰지 않고 거부했다 결국 대사헌 겸 부제학 이경석은 '글을 배운 것이 천추의 한입니다' 라며 항목문서를 썼다
삼전도비는 삼전도의 욕비(辱碑)라고 하며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라 한다 이경석이 글을 지었고 오준이 글씨를 썼고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제목은 여이징이 썼다 비석 앞면 좌측은 몽골글자로, 우측은 만주글자로, 뒷면은 한자로 쓰였다
어리석은 조선왕은 위대한 청황제에게 반항했다 청황제는 조선왕을 타이르고 대죄를 납득시켰다 조선왕은 어리석음을 맹성하고 청황제의 신하가 되는 것을 맹세했다 청황제의 공덕을 잊지 않고 죄를 반성하기 위해 삼전도비를 세운다고 기록됐다
1895년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하자 강물에 수장했고 1913년 일제가 다시 세워놓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강물에 버렸으나 1963년 홍수로 다시 모습이 드러났다 1983년 석천동으로 옮겨다가 2010년 본래의 위치인 석촌호수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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