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향 특집 / 14 개헤엄)
일제 강점기에 현준호가 조선총독부의 비호를 받아 조선증미계획의 일환으로 영암군 서호면과 군서면을 사이로 흐르는 서호강을 간척하여 9,999 마지기의 거대한 학파농장을 만들었다 서호동 학파동 죽림동 남하동 무송동 등 마을까지 생겼다
산골정에서 오리를 걸어 가면 영산강과 서호강이 만나는 곳에 뻘밭이 있었다 뻘밭에는 숭어 짱뚱이 운주리 때가니 맛 게 조개 낙지 등 바닷고기가 많았다 뻘밭에 가기 위해 먼저 헤엄을 배워야 한다
논 한가운데 노깡이 묻어있는 장구새암이나 도내기둠벙에서 물어 뜨는 방법을 익힌 다음 댓골방죽으로 올라가서 정식적으로 헤엄을 친다 댓골방죽을 왕복하면 헤엄을 친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면 뻘밭에 가서 고기를 잡았다
국민학교 5학년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먼저 댓골방죽으로 가서 헤엄을 친다 친구들은 시멘트로 만들어진 문행기에서 머리부터 날아가서 한 바퀴 돌고 나서 낙하하는 다이빙을 하며 더위를 식혔다
머리부터 낙하는 다이빙이 겁이 나서 달려가서 발부터 낙하했다 그런데 발바닥에 수건이 걸려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 밖으로 나와서 보니 발바닥이 한 뼘정도 찧어있었다 친구들이 방죽 아래 큰집 형님집으로 달려가서 사태를 알렸다
큰집 형님의 경운기를 타고 엄청나게 많은 피를 흘리면서 성재리 약방으로 갔다 약방이란 동네 할아버지가 몇 가지 상비약을 파는 곳이다 약방 할아버지는 다행히 동물을 몇 번 꿰매봤다면서 자전거 고무줄로 다리를 묶고 마취도 없이 상처를 꿰맸다
집에서 기말고사를 보고 여름방학이 끝나자 겨우 리어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추석이 지나서야 상처가 아물자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물이 싫고 다이빙이 무섭다 그래도 개헤엄을 아직도 잊지 않고 할 수 았다
그해 여름이 가물어서 댓골방죽 물이 마르자 누가 던진 낫이 거꾸로 세워져 있었다고 하였다 겁이 없고 용기가 좋아 머리부터 뛰어내렸으면 어찌 됐을까 상상하기도 싫다 지금도 왼쪽 발바닥에는 9센티 정도의 상처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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