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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부여)

역사야톡 2023. 11. 18. 19:59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부여)

부여(夫餘)는 예맥족과 읍루족이 고조선 후기부터 삼국시대 중반까지 송화강과 눈강이 만나는 만주 길림성의 송눈평야 일대에 존속했던 고대국가이다 부여는 위만조선 한나라 등과 비슷한 시기에 발흥했다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설화는 매우 흡사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북부여 동부여 남부여 홀본부여 갈사부여 등 여러 부족 국가가 존재했다고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부여라고 하면 북부여를 지칭한다

부여는 가축의 이름을 딴 부족장인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 등 깨의 가(加)가 사출도(四出道)를 다스렸다 형법(刑法)은 아주 준엄하여 살인 간음 등은 극형에 처했다

부여에서는 공동체의 집단적인 농경의례의 하나로서 풍성한 추수감사제 성격을 지니는 제천의식으로 영고(迎鼓)가 행해졌다 또한 지배층 인물이 사망했을 때 강제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죽은 사람을 함께 안치하는 매장하는 순장이 행해졌다

부여에서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부양하던 형사취수(兄死妻嫂)의 풍습이 있었다 형사취수는 유목 민족에게 나타나는 풍습으로 재산이 혈족이 아닌 다른 혈족에게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이다

일부다처제는 한 명의 남편이 동시에 여러 아내가 있는 제도로 현재는 대부분의 나라나 민족에서 사라졌다 축첩은 가부장제 가족 제도에서 본처 외에 첩을 두도록하는 것으로 서얼차별 등 사회적 문제를 낳은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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