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대마도 특집 / 9 최익현과 덕혜옹주)
최익현(崔益鉉)은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서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과거에 급제하여 동부승지 참의 현감 참판·관찰사 등을 역임했고 흥선대원군의 월권행위를 비판하며 위정척사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최익현은 강화도 조약에 체결되자 광화문에 도끼를 메고 개항 불가를 주장하는 병자척화소(丙子斥和疏)를 올렸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모집하여 임병찬과 더불어 전라도에서 거병했다 관군에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됐다
최익현은 대마도주의 단발 요구에 항의하며 단식을 시작했고 대마도주가 사과하자 단식을 중단했다 단식 후유증으로 유배 3개월 만에 74세의 나이로 대마도에서 사망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신의 나이 75살이오니 죽어도 무엇이 애석하겠습니까. 다만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고 원수를 갚지 못하며, 국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 눈을 감지 못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최익현이 임병찬에게 전한 유서의 일부이다
덕혜옹주(德惠翁主)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순종 의친왕 영친왕의 이복동생이다 일본의 요구로 유학을 명분으로 도쿄로 끌려가서 가쿠슈인(学習院) 중등과에서 수학했다
덕혜옹주는 일본의 요구로 소 다케유키(宗 武志)와 정략결혼을 하여 딸 소 마사에(宗正惠)를 낳았다 덕혜옹주는 조현병과 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이혼했고 1962년 귀국하여 1989년 사망했다
소 다케유키(宗 武志)는 소 가문의 37대 당주이자 백작으로 쓰시마 번주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덕혜옹주와 정략 결혼했다 일본의 패망으로 평민이 되어 이혼했다 레이타쿠(麗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1985년 사망했다
소 마사에(宗正惠)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의 시인인 소 노보루(鈴木昇)와 결혼하여 덕혜옹주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소 마사에는 24세에 유서를 남기고 실종했고 소 노보루는 2007년 실종된 아내의 유품을 발견하고 ‘기억의 미나와’를 남겼다
“나라사키의 비 내리는 산길 / 내 아이 가버린 후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 / 오늘도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소 다케유키가 딸 소 마사에를 잃고 남긴 시이다
“먼 바다 갈매기가 모여드는 섬에서 내 사랑하는 아내를 잊지 않을 거야. 세상이 다할 때까지.” 소 다케유키가 아내 덕혜옹주를 생각하며 남긴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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