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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조선 특집 / 7 기자동래설)

역사야톡 2024. 1. 3. 19:56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조선 특집 / 7 기자동래설)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은 중국 은나라의 기자가 조선으로 와서 단군조선에 이어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학설이다 기원전 195년 위만(衛滿)에게 멸망될 때까지 900여 년 동안 존속했다고 주장한다 남한과 북한은 기자동래설과 기자조선의 존재를 부정한다

전한의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 기자는 은나라의 폭군 주왕의 지배를 거부하고 조선으로 망명했고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기록했다 전한의 복승(伏勝)은 상서대전(尙書大傳)에 은나라의 왕족인 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조선후로 봉했다고 기록됐다

고구려에서는 태양신 영성신 가한신 등과 함께 기자신을 섬겼다 고려시대에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굳어지자 기자를 유교문화의 시원으로 숭상했다 고려 15대 숙종은 평양에 기자사당을 짓고 기자묘를 만들어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一然)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자가 고  조선으로 와서 평양에 도읍을 두고 8조법금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기록했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편찬한 제왕운기(帝王韻紀)에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을 체계화 되었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국호를 사용했다 조선의 개국공신 권근(權近)은 동국사략(東國史略)에서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이어지는 상고사 체계를 정립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의 역사를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셋으로 구분했다 단군조선은 기원전 2333년부터 기원전 1122년까지, 기자조선은 기원전 1122년부터 기원전 195년까지, 위만조선은 기원전 195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3단계로 구분했다

기자에 대한 숭앙심의 기저에는 사대부들의 소중화 의식(小中華 意識)에서 비롯됐다 사림이 정치를 주도하며 왕도정치를 구현을 위해 기자조선의 정통성이 강조됐고 기자에 대한 숭앙심은 고조됐다

20세기 민족주의 의식이 고양됨에 따라 기자동래설과 기자조선의 존재에 본격적인 부정과 재검토가 시도됐다 기자동래설과 기자조선은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이후의 문헌에만 등장한다 

1964년 대한민국 교과서에서 기자조선을 삭제키로 결정했다 학계에서는 현재 고고학적 발굴과 배치되어 기자조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재 긍정하는 입장과 부정하는 입장이 양립하고 있다 고조선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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