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소호정의 추억)
대박산(大朴山)은 은적산의 중앙에 있는 봉우리로 과거시험에 급제한 선비가 관모를 쓰고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는 산봉우리이다. 대박산을 관봉(冠峰), 관대봉(冠大峰), 간대바위 등으로 불렸다.
대박산에서 바라보면 동쪽으로 월출산의 월출이 황홀하고, 서쪽으로 유달산의 일몰이 아름답다. 추석이 되면 산골정 형제들은 소호정에서 모여 함께 대박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키웠다.
소호정(蘇湖亭)은 1612년 서희서가 산골정 마을 입구에 지은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단층 구조이다. 소호정은 뒤에는 대박산, 앞에는 서호강의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에 자리했다.
좌의정 이정귀, 예조판서 신흠, 형조판서 이안눌, 암행어사 신명규 등이 소호정에 들려 경치를 극찬하고 시문을 남겼다. 소호정은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소실되어 초석만 남아 있는 것을 중건했다.
'해동의 명승지라 청서와 잇닿았나니 / 사람은 동오와 같고 땅은 소주(蘇州)보다 나아라 / 한 줄기 물은 멀리 드넓은 평야 둘러싸고 / 어지러운 산들은 둥글게 외로운 정자 에워쌌어라' 좌의정 이정귀(李廷龜)가 소호정을 방문하여 남긴 시조이다.
소호정은 중국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杭州)의 시후(西湖)를 본떠 지은 이름이다. 소호정은 덕진 영보정과 구림 회사정과 더불어 영암의 3대 정자 중 하나이다.
소호정은 어린 시절의 수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밤에는 모기장을 치고 수박 서리를 하여 먹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였다. 바둑과 장기를 배웠고 땅치기와 대방구를 하였고 호박곤과 수박곤을 두며 원대한 꿈을 꾸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애향단에서 남자는 마당을 청소했고 여자는 마루를 청소했다. 붉은 배롱나무와 노란 은행나무가 어우러진 소호정은 추억의 산실이다.
소호정 앞에서 겨울이 되면 연날리기를 하였다. 신우대를 두 쪽을 갈라 다듬어서 밥풀을 발라 창호지에 붙여 연을 만든다. 밥풀은 쌀밥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집은 쌀반보리반이라 연을 만들 수가 었었다.
옆집 동생 방학숙제를 대신 해주고 마마보온밥통에서 쌀밥을 한 숟가락 얻어서 방패연이나 가오리연을 만들어 연싸움을 하었다. 정월보름이 되면 연줄을 끊어 연을 달려버렸다.
소호정에서는 술래잡기 놀이의 하나인 대방구를 하였다. 전봇대를 기둥으로 정하고 술래가 숨은 사람을 포로로 잡고, 숨은 사람이 포로를 살리는 대방구를 하였다. 기둥에 한손씩 잡고 길게 뻗어 같은 편에게 기원을 요청한다.
포로를 살릴 때 대방구라고 소리친다. 동네형이 술래를 피해 숨다가 치칸에 빠져 버렸다. 형은 그때부터인지 몰라도 달리기를 너무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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