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군정관청 특집 / 3 당나라의 계림도독부)
당나라는 660년 백제에 5개 도독부를 설치했고 웅진에 웅진도호부를 두고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도독으로 임명했다 668년 고구려에 9개 도독부를 설치하고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설인귀를 도독으로 임명했다
당나라는 신라까지 영토로 편입하기 위한 기미정책의 일환으로 663년 신라에 명목상의 군정기관인 계림도독부(鷄林都督府)를 설치하고 신라 제30대 문무왕을 계림주도독부 대도독으로 임명했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과 합력하여 나당전쟁을 일으키자 당고종은 신라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문무왕의 아우 김인문(金仁問)을 신라왕으로 삼았다 김인문은 신라왕을 거부하여 즉위도 하지 못했고 귀국도 하지도 못하고 장안에서 사망했다
당나라는 신라를 회유하고 협박하기 위해 제30대 문무왕을 계림도독부 도독으로 임명하고 웅진도독부 도독인 부여융과 문무왕과 동격으로 취리산 회맹을 맺었다 문무왕에 이어 제31대 신문왕, 제32대 효소왕, 제33대 성덕왕이 차례로 임명했다
나당전쟁은 670년 신라의 요동 선제공격부터 676년 기벌포 전투 승리까지 7년 동안 진행됐다 당나라 세역을 대동강 이북으로 밀어내고 당나라로부터 대동강 이남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을 당나라에 빼앗겼다
신라와 당나라는 단교했고 당나라는 나당전쟁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준비를 하였으나 측천무후가 즉위하여 신라 재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구려의 유민인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여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남북국시대가 지속됐다
발해가 당나라를 침략하자 신라는 발해를 공격하여 신라와 당나라는 나당전쟁 이후 최초로 화친을 맺었다 당현종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회유하고 협박하기 위해 홀한도독부(忽汗都督府)의 도독(都督)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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