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파락호)
이하응은 세도정치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난전과 투기를 일삼고 잔칫집에 찾아가 걸식을 하면서 파락호 행세를 하여 목숨을 부지했다 이하응은 아들을 고종으로 옹립하고 흥선대원군이 되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 대표적인 파락호이다
파락호(破落戶)는 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허랑방탕(虛浪放蕩)하여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을 이르는 말이다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환은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으로 의병장 김흥락(金興洛)의 손자이다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서애 류성룡과 함께 주리론을 계승하여 영남학파의 중심이 되었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 통신사 부사로 다녀와서 일본이 침략을 하지 않을 것이라 보고했고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순직했다
김흥락(金興洛)은 김성일의 종손으로 퇴계와 학봉의 학통을 잇는 유학자로 위정척사론을 견지했다 단발령이 내려지자 의병으로 활동했다 의병이 해산되자 학문에 몰두하다가 서산집(西山集)을 남기고 사망했다
김용환은 일본군에 의해 순국하자 항일의 뜻을 품었다 을미의병이 일어나자 의병장 이강년의 13도 창의군에 군자금을 제공하며 독립운동을 하였고 두 차례나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뤘다
김용환은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하려다가 신의주에 일경에 체포되어 안동으로 돌아왔다 독립운동가를 도와줄 방법이 봉쇄되자 파락호를 자처하고 온갖 노름판을 전전하며 전 재산을 노름으로 날린 것처럼 행세했다
김용환은 현재 시가 200억 원이 넘는 저택과 논밭을 가진 부자에서 일경의 눈을 피해 파락호 행세를 하며 만주로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했다 1995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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