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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17 / 호헌철폐! 독재타도! 6월항쟁 1)

역사야톡 2024. 8. 5. 19:46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17 / 호헌철폐! 독재타도! 6월항쟁 1)

1971년 치러진 7대 대선을 끝으로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지 못했다. 1987년 12월 예정된 13대 대선을 앞두고 직선제 개헌 요구가 분출했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현재의 헌법을 옹호한다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재야와 야당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직선제 개헌을 촉구하는 6.10 범국민대회를 개최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졌다.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하고 치니 갑자기 '억'하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라고 발표했다.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조작 사실을 폭로했다. 전두환은 총리, 안부기장, 내부장관, 법무장관, 검찰총장 등을 경질했다. 박종철의 죽음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987년 6.10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 이한열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박종철에 이어 이한열이 쓰러지자 6월 10일 전국 동시다발로 택시와 버스 운전자는 경적을 울리고 시민들은 손수건을 흔들며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6.10 국민대회를 강행했다. 전두환은 장충체육관에서 노태우를 13대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전국 22개 주요 도시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전두환 정권은 모든 경찰 병력을 동원했지만 야간시위와 철야농성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당시 전남대는 용봉대동제 기간이라 낮에는 용봉동에서 밤에는 금남로에서 광주시민들과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요구했다. 만약에 비상계엄령이 내리면 전남대 정문으로 모이자는 사발통문을 돌리며 장기항쟁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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