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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예송논쟁)

역사야톡 2024. 8. 10. 19:53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예송논쟁)

인조는 장남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자 원손을 왕세손으로 책봉하는 관례를 거부하고 차남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헸다 인조는 사망한 소현세자를 폐위시키고 폐세자로 불렀다 소현세자는 고종 때 복권됐다

인조의 후궁인 소용조씨가 폐세자빈 강씨가 임금의 수라에 독을 넣어 독살하려 했다고 무고했다 임신 중인 부인 강씨는 사사됐고 친정 동생들은 파직되어 모두 유배됐다 강씨를 모시던 궁녀들도 모두 고문을 당해 사망했다

12살의 경선군 석철, 8살의 경완군 석린, 4살의 경안군 석견 등 세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됐다 장남 석철과 차남 석린은 풍토병으로 사망했고 석견은 강화도로 이배되어 10년 만에 해배됐고 2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서인은 왕과 사대부가 같다는 이기일원론을, 남인들은 왕과 사대부가 다르다는 이기이원론을 주장했다 서인들은 소현세자 상례에 대해 기년복(1년) 대신 참최복(3년)을 주장했다 하지만 인조는 소현세자의 장례를 약식으로 진행했다

소현세자의 장자를 대신하여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했다 효종이 즉위 10년 만에 요절하고 현종이 즉위하자 인조의 계비이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소현세자가 인조의 장자라면 3년, 차자라면 1년 상복을 입게 되었다

1차 예송논쟁에서는 효종은 인조의 장자가 아니라 차자라는 정권을 장악한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서인이 승리했다 윤선도가 송시열을 공격하다 파직되어 유배됐다 결과적으로 효종과 현종의 정통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2차 예송논쟁에서는 효종비가 사망하자 소현세자가 인조의 장자라면 1년, 차자라면 9개월 상복을 입는 문제로 1차 예송논쟁이 재현됐다 현종이 남인의 주장을 수용하여 서인을 축출하고 남인을 등용하고 급서하고 숙종이 즉위했다

예송논쟁은 상복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효종과 현종에 대한 국왕 자격에 대한 정통성 시비로 왕권이 추락했다 숙종이 즉위하여 할아버지 효종과 아버지 현종의 적통을 그르쳤다는 이유로 송시열을 유배보내 사사했다

숙종은 앞으로 예론을 논쟁이나 상소하면 역률로 다스리겠다면 논쟁을 금지시켰다 숙종은 남인 일파를 축출하고 서인 일파를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신권을 억누르는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을 단행했다 경신환국(庚申換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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