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단장곡)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종6품 의금부 도사(義禁府 都事) 왕방연(王邦衍)이 영월에서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긴 시조 '단장곡(斷腸曲)'이다 단장곡은 1728년 김천택이 고려와 조선의 시조를 엮은 시조집 '청구영언'에 남아 있다
단종은 12살에 왕이 되었으나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켜서 김종서와 황보인을 살해하고 정권을 빼앗았고 금성대군마저 모반죄로 유배를 보냈다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양위하여 상왕으로 물러났다
단종은 사육신들의 상왕 복위음모가 적발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다 금성대군의 상왕 복위계획이 적발되어 노산군은 서인으로 강등되어 죽임을 당했고 금성대군도 처형됐다
왕방연이 노산군을 유배지 영월까지 호송했다는 주장과 영월에 가서 노산군에게 사약을 전했다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다 영월호장 엄홍도가 노산군을 몰래 수습하여 노산군의 시신을 안장하고 벼슬을 버리고 은둔했다
세조실록에는 노산군이 장인 송현수와 금성대군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자결했다고 기록됐고 숙종실록에는 노산군이 세조가 전한 사약을 마시고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고 사망했다고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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