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43 / 광전연합(光全聯合) 정책실장으로)
1989년 전국민족민주 운동연합(全國民族民主 運動聯合)이 5.18 지역적 고립과 대선의 조직적 분열을 통감하고 한국전쟁이 이후 최초로 전국적인 조직으로 창립됐다. 1991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에 대응하여 전민련을 계승하여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을 결성했다. 전국연합에는 문익환·계훈제·백기완·이부영·오종렬·장기표·김근태·박계동·이인영 등이 참여했다.
오민련에서 민주주의 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정책실장으로 옮겨서 사회활동을 계속했다. 광주전남 연합은 노동·농민·청년·학생·종교·예술·교육·5.18 등 광주전남 의 각계 각층의 통일전선 조직이다. 1992년 12월 18일 치러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이 당선됐다. 이재오·김문수·손학규 등 재야 인사들이 5.16쿠데타 이후 32년간 이어진 군사 정권 시대가 막을 내리고 탄생한 문민정부에 기대를 걸고 전향했다.
1993년 3월 18일 김영삼은 광주를 방문하여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5월 단체들과 면담을 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전남 연합에서는 김영삼의 망월동 참배에 대해 설왕설래를 하였다. 남총련은 광주항쟁 학살자 처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며 망월동 참배를 저지했다. 1993년 5월 13일 김영삼은 "진상규명과 관련하여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훗날의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고 믿습니다."라고 제안했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의 정책위원으로 매월 정세를 논의하고 정책을 제시했다. 고집불통인 서울 사람들, 융통성 없는 경상도 사람들, 벽창호 같은 충청도 사람들, 단순무식한 전라도 사람들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전국 집회를 1시에 할 것인지 2시에 할 것인지 5시간 동안이나 논의했다. 광주전남 연합을 대표해서 우리는 2시에 도착한다고 말하자 모두가 2시에 시작하자고 결정했다.
1994년 5월 13일 재야인사 정동년, 김상근 등 616명이 12.12 반란 및 5.17 내란을 주도한 혐의로 전두환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검찰에 접수했다. 1995년 1월 9일부터 1995년 2월 16일까지 YH 사건, 5.18, 삼청교육대 등을 배경으로 SBS의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송됐다. 1995년은 내란죄와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해이다. 5.18 15주기를 맞아 전국에서 학살자를 처벌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졌다.
1995년 7월 18일 서울지검에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며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전국에서 학살자 처벌을 위한 투쟁이 격화됐다. 10월 20일 노태우 4천억 비자금이 폭로되자 김영삼은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1995년 11월 30일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여 12월 3일 전두환을 내란, 반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등으로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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