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류영경과 영창대군)

역사야톡 2024. 10. 12. 19:45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류영경과 영창대군)

류영경(柳永慶은 종9품 참봉 류의(柳儀)의 아들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집하여 황해도 순찰사로 임명되어 왜적의 수급 60여급을 베어 정3품 호조참의에 올랐다

류영경은 황해도관찰사와 병조참판에 이어 정2품 이조판서가 되었고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당되자 북인을 선택했다 선조를 의주까지 호송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책록되어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까지 승진했다

북인은 류영경 류희분 박승종 등 소북파와 정인홍 기자헌 유몽인 이이첨 등 대북파로 분화됐다 류영경은 소북파의 영수가 되어 선조의 후계자를 왕세자 광해군(光海君)을 영창대군(永昌大君)으로 교체할 것을 주장했다

선조가 광해군을 왕으로 삼고 영창대군을 보호하라고 유교칠신(遺敎七臣)에게 교지를 내리고 사망했다 유교칠신은 선조가 영창대군을 보호하라는 유명을 내린 루영경 신흠 박동량 허성 등 일곱 명의 신하를 말한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 이이첨 등으로부터 유교칠신이자 영의정 류영경의 탄핵이 제기됐다 류영경은 파직되어 함경도 경흥으로 유배되어 자결명령을 받아 사사(賜死)됐고 다시 유생의 명부인 청금록(靑衿錄)에서 삭제되고 부관침시되었다

영창대군(永昌大君)은 방계승통으로 즉위한 서출의 선조가 55세에 낳은 유일한 적자이자 계비 인목왕후의 유일한 아들이다 계축옥사로 외할아버지 김제남이 반역죄로 사사되고 외숙은 처형됐고 어머니 인목대비는 서궁(西宮)에 유폐됐다

영창대군은 폐서인(廢庶人)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어 9세의 나이에 살해됐다 인조반정으로 영창대군은 관작이 복구됐고 인목왕후는 대왕대비로 진봉됐다 폐모살제와 친명반금을 명분으로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소북파 류희분은 사사됐고 박승종은 자결했다 대북파 이이첨은 처형됐고 유몽인과 기자헌은 출사를 거부하여 숙청됐고 류영경은 복권됐다 북인들은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몰락하여 다시는 중앙정계에서 등장하지 못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행복한요양병원 #유영경 #영창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