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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려특집 1 / 왕건과 외왕내제)

역사야톡 2024. 11. 24. 19:56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려특집 1 / 왕건과 외왕내제)

왕륭(王隆)은 송악의 신흥 호족으로 궁예가 거병하자 휘하에 들어가서 금성태수(金城太守)를 역임했다 왕륭이 궁예에게 자신의 아들 왕건(王建)은 송악 성주로 추천했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자 세조위무대왕으로 추존됐다

왕건(王建)은 왕륭의 장남으로 태봉 궁예의 휘하에서 장수가 되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주요 지역을 점령하며 태봉의 영토를 확대했다 후백제의 배후인 나주를 점령하고 후백제와 중국의 교류를 차단했다

왕건은 전라도 나주 금성산(錦城山)에서 오색구름이 서려 있는 곳에서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어 물을 떠주는 처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훗날 처녀는 장화왕후가 되었고 아들은 2대 혜종으로 즉위했다

왕건은 후백제와 교전에서 승리하여 궁예의 총애를 받아 약관의 나이에 파진찬 겸 시중까지 올라 태봉국의 제2인자가 되었다 하지만 궁예는 관심법으로 호족과 신하를 살해하며 왕건의 충성심을 시험했다

왕건은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 등의 추대를 받아 궁예를 축출하고 철원에서 고려를 창건했다 수도를 송악으로 천도하고 숭불정책과 북진정책을 건국이념으로 경상도에 대해 우호정책을 펼쳤고 전라도에 대해 정복정책을 펼쳤다

왕건은 거란에 멸망한 발해의 유민을 흡수하고 후백제를 정복했다 신라 경순왕이 투항하여 후삼국을 통일했다 왕건은 29명의 왕비로부터 25남 10년을 낳았다 훈요10조(訓要十條)를 유훈으로 남기고 사망하자 장남 무(武)가 혜종으로 즉위했다

4대 광종은 개경을 황도(皇都), 서경을 서도(西都)라고 칭하고 고려는 임금을 짐(朕), 임금의 명령은 조서(詔書), 임금의 호칭은 폐하(陛下), 임금의 아들은 태자(太子)로 호칭했다 또한 묘호와 연호를 사용하며 고려가 천하의 중심임을 선포했다

고려는 대외적으로는 자국의 군주를 왕으로 칭하지만 속내는 황제로 내세우는 외왕내제(外王內帝) 이중체제를 유지했다 요나라 금나라 송나라 등과 외교적 마찰을 줄이기 위해 국왕을 자칭했다

임금의 묘호에 조(祖), 종(宗)을 금지하고 원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충(忠) 자를 넣었고 임금의 호칭은 전하(殿下), 임금의 아들은 세자(世子)로 낮추어 부르게 되었다 고려의 외왕내제는 몽골제국의 침략 때까지 300년 동안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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