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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9 '북벌론')

역사야톡 2019. 5. 5. 13:19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9 '북벌론')

 

북벌론(北伐論)은 소중화(小中華)에 입각하여 청나라를 정벌하여 조선의 치욕을 씻고 명나라의 원수를 대신 갚자는 것이다 소중화는 중화인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조선만이 유일한 소중화라고 하는 논리이다

 

청나라의 초대 황제인 아버지 누르하치와 2대 황제인 아들 홍타이지가 산해관 공격에 실패하고 사망했다 3대 황제인 손자 순치제는 섭정왕 도르곤(多爾袞)을 앞세우고 중원을 공격하며 조선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졌다

 

조선의 김상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등은 군부(君父)인 명나라를 위해 신자(臣子)인 조선이 원수를 갚자는 뜻으로 '복수설치(復讐雪恥)'를 주장했다 하지만 청나라가 중원을 통일하자 군사적 북벌은 사상적 북벌로 변질됐다

 

서인들의 양란으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효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송시열은 신권을 강화하기 위해 북벌론을 추진했다 그러나 청나라에 대해 관념적인 복수심은 가졌지만 현실적으로 복수 의지는 희박했다

 

효종의 사망으로 북벌이 중단됐다 효종의 뒤를 이어 현종이 즉위할 무렵 청나라는 강희제가 집권했다 청나라 강희제는 진나라 시황제, 한나라 무제, 당나라 태종, 명나라 영락제 등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라고 한다

 

송시열은 명나라의 멸망 60년째인 1704년 조선에 큰 은혜를 베푼 명 황제들을 위해 제단을 설치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군사를 파견한 황제 만력제와 마지막 황제 숭정제를 위해 한양에 대보단(大報壇)을 쌓았고 괴산에 만동묘(萬東廟)를 설치했다

 

효종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적 사대주의의 연장으로 왕의 친위군과 왕궁 군사력의 강화에 주력했다 역설적으로 전쟁 패배의 정치적 책임과 경제적 위기를 북벌론으로 극복했다

 

명분론적인 북벌론이 소멸되자 반대로는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등 실학자들이 청나라의 선진적인 문물제도 및 생활양식을 받아들이자는 실용적인 북학론(北學論)을 제기했다 북학은 청나라 문명의 선진성을 인정하고 배우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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