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승만 특집 13 / 4.19 혁명과 하야)
1960년 3월 15일 4대 대통령과 5대 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실시됐다 자유당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한 투표부정과 개표부정이 일어났다 3.15 부정선거 항의 시위 도중 마산에서 실종된 고등학생 김주열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다
이승만은 3.15 마산의거를 공산주의 간첩의 배후 조종으로 일어난 폭동으로 규정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4월 19일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됐고 탑골공원에 있던 이승만 동상을 철거했다
시위대에 경찰의 발포로 180여 명이 사망했다 이승만은 유혈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유당 총재직을 사임하고 대통령직에 전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승만은 1960년 4월 27일 국회에 대통령직 사임서를 제출했다
1960년 4월 28일 이기붕의 장남이자 이승만의 양자인 이강석이 아버지 이기붕, 어머니 박마리아, 남동생 이강욱을 권총으로 쏘고 자살했다 이강석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이승만의 83세 생일날 양자로 입적됐다
1960년 4월 29일 시민대표단이 하야를 요구했다 이승만은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 정부통령 재선거, 이기붕의 공직 사퇴, 국민이 원하면 본인이 책임지겠다"라고 약속했다
첫째는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며
둘째는 지난번 정부통령 선거를 많은 부정이 있었다고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고
셋째는 선거로 있는 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애게 하기 위해서 이미 이기붕 의장이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가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넷째는 내가 이미 합의를 둔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하면 내가 책임질 대안을 할 것이다.
1960년 5월 29일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했다 1965년 7월 19일 이승만은 하와이 마우날라니 요양원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1965년 7월 20일 이승만은 가족장으로 현충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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