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승만 특집 14 /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이승만(李承晚)은 1875년 3월 26일 아버지 이경선과 어머니 김말란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두 형은 이승만이 태어나기 전에 사망하여 사실상의 6대 독자가 되었다 양녕대군의 방계 16대손으로 왕족으로서의 대우는 받지 못했다
1890년 이승만은 동갑내기 박승선(朴承善)과 결혼하여 1898년 6월 9일 이봉수를 낳았다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출옥하고 미국으로 떠났고 아들 이봉수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서 10개월 만에 디프테리아로 사망했다
이승만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박승선과의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호적이 정리되지 않아 이승만과 박승선은 법적으로 부부였다 이승만이 해방이 되자 프란체스카와 함께 귀국하여 돈암장에서 기거하며 박승선을 찾지 않았다
박승선은 돈암장으로 찾아가서 이승만과 프란체스카에게 "내가 살아 있는 한 누구도 첩이지 부인이 아니다" 라고 항의했다 이승만은 1949년 박승선의 호적을 말소하고 프란체스카 도너와 결혼 신고를 했다 박승선은 한국전쟁 당시 사망했다
프란체스카 도너(Francesca Donner)는 1900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수도 비엔나에서 유대교 가문에서 태어났다 1920년 독일의 자동차경주 선수 헬무트 뵈룅과 결혼하였으나 3년 만에 이혼했다
1934년 이승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표하여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연맹 회의에 참석하여 프란체스카를 만났다 미국 뉴욕에서 유부남 이승만과 이혼녀 프란체스카가 불법적으로 중혼을 하였다
미국은 백인은 유색인과 혼인할 수 없었으나 프란체스카가 미국인이 아니라서 동양인과 혼인이 가능했다 프란체스카의 국적이 오스트리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와전되어 호주댁(濠洲宅)으로 불렸다 해방이 되자 함께 귀국하여 돈암장에 기거했다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자 대통령 배우자 자격으로 경무대에 입주했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과 함께 하와이로 도망갔다 이승만이 사망하자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1970년 대한민국으로 초청으로 귀국하여 1992년 사망하여 현충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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