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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승만 특집 16 / 부통령 이시영)

역사야톡 2024. 12. 29. 19:49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승만 특집 16 / 부통령 이시영)

이시영(李始榮)은 종1품 우찬성 이유승(李裕承)의 다섯째 아들로 총리대신 김홍집의 딸 김씨와 결혼하여 혼인하고 박씨와 재혼했다 음서(陰敍)로 벼슬을 시작했고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와 홍문관수찬을 역임했다

이시영은 장인인 김홍집이 살해당하자 사직하고 물러났다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직했다 평안남도 관찰사, 한성재판소 소장, 한성고등법원 판사 등을 지냈다 한일합방 조약 체결되자 관직을 사퇴했다

시영(始榮)은 건영(健榮) 석영(石榮) 철영(哲榮) 회영(會榮) 호영(護榮) 6형제와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하고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다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며 법무부장 재무부장 감찰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이시영은 중일전쟁으로 임시정부가 창사 광저우 충칭 등으로 옮길 때 함께했다 일본이 항복하자 6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서 귀국했다 대한독립 촉성국민회에 참가하여 이승만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와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이시영은 1948년 7월 20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선출됐다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내려갔다 국민방위군 사건을 일어나자 제1공화국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부통령직을 사퇴했다

이승만이 발췌개헌으로 대통령 직선제 도입하자 반독재 구국선언을 하며 반대했다 1952년 제2대 대선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이승만에 패배했다 임시수도 부산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여 북한산 기슭으로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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