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여성특집 / 9 수덕사의 여승 '김일엽')
김일엽(金一葉)은 독립 운동가인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원주(元周)이며 이화학당과 일본 닛신여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에서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교사이자 이혼남이며 다리 하나가 없는 18살 연상의 이노익과 결혼했다
남편 이노익의 도움으로 일본 도쿄영화학교에서 공부했다 3.1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자 이광수가 필명 '일엽'을 지어줬다 여자에게만 정조와 순결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역설했다
도쿄은행장의 아들인 오오타 세이죠(太田淸藏)의 아이를 임신하였으나 귀국했다 유부남인 시인 임장화와 동거했고 불교학자인 백성욱과 동거했다 동아일보의 기자 국기열과 동거했다 이광수와 사랑하다가 헤어지고 대처승인 하윤실과 재혼했다
잡지 '삼천리'는 <남편이 감옥에 갇혔거나 독립운동으로 망명했을 때 부인이 순결을 지켜야 되느냐>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정칠성은 지켜야 한다고 했고 허정숙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일엽은 '최소한 1년에서 3년 정도는 참아야 된다'고 했다
충남 예산의 덕숭산 수덕사에서 삭발했고 강원도 금강산 서봉암에서 출가했다 오오타 세이죠(太田淸藏)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 김태신이 찾아오자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라'라고 훈계했고 '글 또한 망상의 근원'이라고 절필했다
1962년 스님 김일엽은 비구니로서 자신의 과거 및 현재의 심정을 그대로 털어놓은 수필 '청춘을 불사르고'를 출판했다 가수 송춘희는 육체의 정조가 아닌 정신의 정조를 강조했던 김일엽을 모델로 노래 '수덕사의 여승'을 발표했다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수덕사에서 일엽의 눈물과 쇠북 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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