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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읍성)

역사야톡 2025. 1. 29. 19:48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읍성)

영암읍성(靈巖邑城)은 고려 말기에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영암읍에 쌓았다 영암읍성은 남문 서문 동문 북문 등 4개의 성문이 있었고 둘레가 2km로 호남에서 규모가 가장 읍성이다 읍성은 지방의 관청과 민가를 둘러서 쌓은 성이다

영암읍성의 외벽은 구릉을 깎아내어 석축을 쌓았고 내벽은 깎아낸 흙을 가져다가 경사를 만들었고 현재 400여 미터가 남아 있다 양달사 의병장이 성안의 백성들을 위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장독샘을 파놓았다

양달사(梁達泗)는 영암 출신으로 양팽손(梁彭孫)으로부터 수학하여 무과에 급제하여 해남 현감으로 재임하던 중에 모친상으로 영암으로 귀향했다 을묘왜변이 발생하자 의병을 규합하여 조선 최초의 의병장으로 활동했다

양달사는 영암읍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상중에 출전하여 아무런 포상을 받지 못했다 양달사는 사망한 지 300년이 지난 후에 유림의 상소로 정3품 좌승지로 추증됐다

을묘왜변은 조선 명종 때 왜선 70여 척이 전라도 해안을 습격하여 전라도 영암 강진 장흥 해남 진도 등 10진이 함락되고 전라병마절도사 장흥부사 진도군수 등이 전사하고 영암군수는 항복하고 전라도병영 군사가 전멸한 사건이다

열무정(閱武亭)은 영암읍성 안에 조선 중종 때 창건된 앞면 3칸 옆면 2칸 팔작지붕 정자로 사포계 모임을 가진 곳이다 사포계(社砲契)는 활을 쏘는 사람들이 무예를 연마라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조선 정조 때 창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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