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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사마천의 '이릉지화')

역사야톡 2019. 11. 8. 18:53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사마천의 '이릉지화')

 

이릉(李陵)은 한나라 7대 황제인 한무제 때의 장군으로 기원전 99년에 겨우 5천 명의 보병으로 북방의 흉노족 5만 명을 정벌하기 위해 떠났다 적진 깊숙히 들어가서 후미와 떨어져서 오히려 포위되어 포로가 되었다

 

일부는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고 일부는 자결했다 하지만 이릉은 포로가 되어 흉노족으로부터 후대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한나라로 돌아왔다 신하들은 한무제에게 이릉을 고발했고 한무제는 격노하여 이릉의 가족을 몰살했다

 

사마천은 유일하게 이릉을 변호했다 한무제는 격노하여 사마천의 허리를 자르는 사형을 언도했다 한나라의 법에는 동전 50만 전을 국고에 납입하거나 생식기를 없애는 궁형을 받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사마천은 치욕적인 궁형을 자처했다

 

'내가 법에 따라 사형을 받는다고 해도 한낱 아홉 마리의 소 중에서 굵은 털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을 뿐이다 부족한 문장에 의지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결심했네' 사마천은 자결을 요구하던 친구 임안에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밝혔다

 

'나는 살아서 역사를 쓰고자 하였소 난 살아서 수치스러웠지만, 이 나라의 어리석은 지도자들은 역사 속에서 두고두고 지탄을 받을 것이오' 사마천은 역모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자결을 결심한 친구 임안에게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말했다

 

사마천은 3년 만에 대사면령으로 출옥하여 환관에게 내리는 중서령에 임명됐다 사마천은 치욕을 감내하고 BC 91년에 '사기'를 완성하고 '훗날 성인 군자를 기다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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