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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전라도] 아름다운 거문도와 슬픈 ‘거문도사건’

역사야톡 2019. 11. 21. 19:57

[역사 속 전라도]아름다운 거문도와 슬픈 ‘거문도사건’

 

서일환 <역사 칼럼니스트>

 

거문도(巨文島)는 전남 여수시 삼산면의 주도이며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의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에 위치한 섬이다. 거문도는 서도(西島), 동도(東島), 고도(古島) 등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삼도(三島) 또는 바다에 떠 있는 산과 같다고 삼산도(三山島)라고 불렸고 고도만을 거문도라 부르기도 한다.

 

서도는 세 개의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며 동백나무로 뒤덮여 있다. 동도는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영국과 일본의 군사시설이 남아 있다. 고도는 가장 작은 섬으로 면소재지이며 거문도항에 위치했다. 서도와 동도는 거문대교로, 서도와 고도는 삼호교로 연결되어 있다.

 

거문도는 섬 모양이 솥처럼 생겼다는 무인도인 삼부도(三夫島)와 남해의 소금강으로 불리며 대한민국의 명승 제7호로 지정된 백도(白島)를 부속 섬으로 거느리고 있다. 여수항-거문도항 사이에 하루에 4번 정기여객선이 왕래하며 날씨가 맑은 날에는 제주도의 한라산이 보인다.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

 

거문도는 3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도내해(島內海)를 이루고 있어 파도가 잔잔하고 수심이 깊어 천연의 항구를 이루고 있다. 서도의 남쪽 수월산에 1905년에 설치된 거문도등대는 우리나라 제1의 등대로 다도해와 제주도의 연안항로를 밝혀주고 있다.

 

거문도는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하여 한낮에도 어두워 검은 섬이라는 뜻의 거문(巨文)이 되었다고 전한다. 거문도는 태조 때 홍양현(고흥군)에 편입됐고, 고종 때 삼도를 거문도라 개칭하고 진을 설치했다. 1998년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등 삼려 통합으로 여수시로 개편됐다.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강제로 점령하고 부동항(不凍港)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조선에 대한 진출을 추진했다. 영국, 청나라, 일본 등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경계했다. 1885년 4월15일 영국 함대가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한다는 구실로 거문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하는 거문도사건(巨文島事件)을 일으켰다.

 

영국 함대는 거문도에 영국 기를 게양하고 해안가에 포대와 병영을 구축하고, 항내에는 수뢰까지 부설했다. 청나라 이홍장과 러시아 라디젠스키가 ‘영국이 거문도에서 철수한다면 러시아는 조선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3개조의 약속을 발표했다. 1887년 2월 27일 영국 함대는 22개월 만에 거문도에서 철수했다.

 

▲영국 함대가 22개월 동안 불법 점령

 

영국은 아편전쟁에서 승리하고 홍콩을 할양하고 다시 지리적, 전략적 가치가 높은 조선의 거문도를 조차하여 영국 함대의 전진기지로 삼으려 하였다. 조선 정부는 자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청나라, 러시아, 영국 3국의 상호교섭에 의존하여 해결하는 무능함과 허약성이 드러나 서구열강의 침탈과 일본의 침략 야욕이 더욱 강화되었다.

 

거문도사건은 1953년 미국, 영국 등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거문도가 거론된 이유가 되었다. 조약에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명시했다. 일본은 조약에 독도가 명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거문도에는 영국군인 10여 명이 묻힌 묘지 옆에 ‘동방의 아침’이라는 조형물과 함께 역사공원이 조성됐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하여 거문도 묘지를 방문하려 하였으나 거리와 경호상의 문제로 안동의 하회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물론 영국은 아직까지 거문도 불법 점령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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