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12 '탕평책')
20대 경종은 숙종과 희빈장씨의 아들이자 영조의 이복형이다 원자로 책봉되어 다시 세자로 책봉됐다 희빈장씨가 폐비되자 세자를 지지하는 소론과 연잉군(영조)을 지지하는 노론간의 당쟁이 벌어졌다 숙종이 사망하자 경종이 즉위하여 4년 만에 요절했다
21대 영조는 숙종과 숙빈최씨의 아들이자 경종의 이복동생이다 연잉군은 경종의 왕세제로 책봉되어 경종을 대리청정하였다 경종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자 '효종 - 현종 - 숙종' 세 임금의 피를 이은 아들이라는 뜻의 삼종혈맥(三宗血脈)으로 영조가 즉위했다
경종은 남인과 소론의 지지를 받아 즉위했고 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받아 즉위했다 영조는 경종 독살설과 당쟁으로부터 벗어나고 왕권강화를 위해 붕당타파를 위한 탕평책을 적극 추진했다
영조는 당쟁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당색에 무관하게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蕩平策)을 시행하여 정국을 주도했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노론마저 시파와 벽파로 분열했다
영조는 노론만 중용하고 소론과 남인을 배척했다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평영남비(平嶺南碑)를 세우고 영남을 반역향으로 지목했다 소론과 남인이 타격을 받았다 소론은 나주괘서사건으로, 남인은 신유박해로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정성왕후와 정순왕후는 후사가 없었다 정빈이씨가 낳은 효장세자는 요절했고 영빈이씨가 낳은 사도세자는 죽임을 당했다 사도세자의 아들 의소세손도 요절했고 정조가 큰아버지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되어 즉위했다 정조는 즉위식에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쳤다
66세의 영조와 15세의 정순왕후는 51세의 나이 차이로 아이를 낳지 못했다 정순왕후는 남편 영조가 사망하고 손자인 정조가 즉위하자 왕대비(王大妃)로 승격됐다 손자 정조가 사망하고 증손자인 순조가 즉위하자 대왕대비(大王大妃)로 승격됐다
정순황후부터 시작된 세도정치는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500년 조선은 일제의 침략으로 무너졌다 독립군들의 항일투쟁으로 해방이 되었지만 아직도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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