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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전라도]판소리 여섯 마당 창작한 신재효

역사야톡 2019. 12. 12. 19:57

[역사 속 전라도]판소리 여섯 마당 창작한 신재효

 

서일환 <역사 칼럼니스트>

 

신재효(申在孝)는 전라도 고창에서 관약방(官藥房)을 운영하여 큰 재산을 모은 신광흠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신재효는 광대와 기생을 관리 감독하는 호장(戶長)을 역임했다. 돌아가신 부친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천석지기 부자가 되어 고창에 가뭄으로 피해를 입은 백성들에게 재산을 나눠주어 고종으로부터 정3품 통정대부가 하사됐다.

 

신재효는 양반이 되었으나 암행어사 어윤중으로부터 저택의 기둥이 신분을 벗어났다고 지적을 받고 기둥을 고쳐지었다. 신재효는 대문 앞에 들츩나무를 심어 덩굴이 섬돌까지 이어지게 하여 자신을 찾아오는 양반들이 머리를 숙여야만 집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신재효는 판소리를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했다. 재산을 모으는 방법을 다룬 ‘치산가(治産歌)’와 서양의 침입을 걱정하는 ‘십보가(十步歌)’ 중인의 신분을 한탄하는 자서가(自序歌) 등 수많은 창작 판소리를 남겼다. 신재효는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 여섯 마당의 판소리 사설을 개작하여 정착시켰다.

 

▲신재효·진채선의 사랑 영화 ‘도리화가’로

 

프랑스군이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강화도를 침범하는 병인양요를 일으켰다. 신재효는 ‘서양 되놈이 무부(無父) 무군(無君)한 천주학(天主學)을 자기 나라에서나 할 것이지 왜 조선까지 왔느냐’는 내용의 판소리 ‘괘씸한 서양되놈’을 창작했다.

 

흥선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위해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경복궁을 준공하고 전국의 소리꾼을 모아 경회루에서 연회를 하였다. 신재효의 여제자인 진채선(陳彩仙)이 ‘명당축원’과 ‘방아타령’을 불러 장원을 하였다. 신재효는 당상관인 종2품 가선대부 겸 오위장으로 승진했고 진채선은 흥선대원군의 첩이 되었다.

 

진채선은 전라도 고창에서 태어난 판소리 명창이다. 흥선대원군은 진채선을 사랑했고, 진채선은 신재효를 연모했다. 진채선은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빼앗기자 병이 들어 있는 신재효에게 달려왔다. 진채선은 신재효 묘지에서 3년상을 치르고 홀연히 사라졌다. 신재효와 진채선의 사랑을 소재로 2015년 영화 ‘도리화가’(桃李花歌)가 개봉됐다.

 

▲서편제의 웅장함과 화려함 조화시켜

 

판소리는 소리꾼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몸짓을 섞어 노래하면 청중이 추임새를 넣어주는 전통 음악이다. 판소리는 17세기에 호남지방 백성들이 시작하여 19세기에 양반들을 대상으로 확대됐다.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동편제는 섬진강 동쪽인 남원, 순창, 흥덕, 구례 등에서 기교가 없어 웅장하고 씩씩한 남성적인 소리이다. 서편제는 섬진강의 서쪽인 보성, 나주, 광주 등에서 발림이 많아 화려하고 정교하며 여성적인 소리이다. 신재효는 동편제의 웅장함과 서편제의 화려함을 조화시켜 ‘듣는 소리’에 ‘보는 소리’를 덧붙였다.

 

판소리의 고장으로 알려진 고창 모양성(牟陽城) 앞에는 신재효 동상과 ‘동리정사(桐里精舍)’가 있다. 모양성은 조선 초기에 왜적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석성으로 고창읍성이라고 한다. 동리정사는 신재효의 생가이자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지금은 초가지붕인 사랑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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