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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김덕령 장군과 충장로)

역사야톡 2019. 12. 20. 19:57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김덕령 장군과 충장로)

 

김덕령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왕세자 광해군으로부터 익호장군, 임금 선조로부터 초승장군 칭호를 받았다 김덕령의 시호 충장(忠壯)을 따서 광주광역시의 대표적인 거리인 '충장로(忠壯路)'가 명명됐다

 

김덕령은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러 올라가다가 충청도에서 반란이 평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전라도로 돌아왔다 김덕령은 선조로부터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역모죄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29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김덕홍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김덕령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가 금산전투에서 순절했다 김덕보는 큰형 김덕홍이 금산전투에서 전사하고 작은형 김덕령이 무고죄로 옥사하자 무등산 계곡에 풍암정을 짓고 은둔했다

 

벼슬을 하지 않고 풍자시를 지으며 전국을 유랑하던 권필(權韠)의 꿈에 김덕령이 나타나서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붓난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의 내 업슨 불이 나니 끌 물 업서 하노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덕령 장군이 나라의 위기를 예감하고 천리마를 타고 무등산에서 무술을 연마했다 천리마가 빠른지 화살이 빠른지 겨루기를 하였다 반환점을 돌아오던 천리마가 화살에 맞아 쓰러져 바위가 되었다 말이 바위가 되자 말바우라고 부르며 두암동이라고 한다 광주는 충장공 김덕령의 혼이 살아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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