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전라도]야담집 ‘어우야담’ 남긴 유몽인
서일환 <역사 칼럼니스트>
어우야담(於于野譚)은 1621년 광해군 때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이 암행어사로 전국을 다니면서 보고, 들은 야사와 항담을 모아 엮은 책이다. 어우야담은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이자 풍자적인 설화와 기지를 모아 엮은 설화집으로 조선 수필의 백미로 손꼽힌다. 원본은 한문본이고 한글본과 함께 전해진다.
어우야담은 왕실과 사대부의 이야기부터 전쟁이 끝났지만 비참하게 살아가는 백성들과 노비들의 고달픈 삶을 기록한 설화문학이다. 원래는 10여 권이었으나 유몽인이 모반죄로 억울하게 처형되자 일부가 소실됐다. 어우야담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야담류’의 효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1964년 유몽인의 후손인 유제한이 필사본으로 전해지던 30여 종의 이본을 수집, 보충하여 어우야담을 5권1책으로 간행했다. 권1은 효열, 충의, 혼인 등 인륜편이고, 권2는 영혼, 귀신, 천명 등 종교편이다. 권3은 문예, 의식, 의약 등 학예편이며 권4는 붕당, 욕심, 해학 등 사회편이다. 권5는 천지, 초목, 금수 등 만물편으로 총 5편으로 구성됐다.
▲야사와 항담을 모은 설화집
유몽인은 선조들의 고향이 전라도 고흥이며 문과에서 초시, 복시, 전시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삼장장원으로 벼슬을 시작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던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평양까지 호종했다. 세자시강원으로 왕세자 광해군에게 글을 가르쳤고 임시정부인 분조에서 함께 활약했다. 선조 때 암행어사, 관찰사, 대사성 등을 역임했고 다시 도승지에 임명되어 광해군의 즉위에 공헌했다.
유몽인은 광해군이 즉위하자 영양군(瀛陽君)에 책봉됐고 대사간, 이조참판 겸 양관제학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정인홍과 이이첨의 인목대비 폐비론 주장을 반대하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어우야담을 저술했다. 광해군으로부터 정2품 대제학에 추천되자 거절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서 ‘흰 머리에 젊은 여자처럼 꾸민다면 어찌 연지분이 부끄럽지 않으랴’며 불사이군을 주장하며 광해군에 대한 절개를 지켰다. 인조반정의 공신인 유응형이 ‘유몽인이 광해군의 복위를 꾀한다.’고 무고하여 체포됐다. 유몽인은 64세의 나이에 아들과 함께 처형되어 수많은 서책도 같이 사라졌다.
▲광해군에 대한 충절은 지켜
정조는 ‘김시습이 웅장한 설악산과 같다면 유몽인은 화려한 금강산과 같다’고 극찬하며 170년 만에 유몽인을 복권했다. 전라도 유생들이 문청(文靑)이라는 사시를 올리고 고흥 운곡사에 봉양했다. 정조는 유몽인에게 의정(義貞)이라는 시호를 이조판서를 추증했다. 1832년 방계 후손들이 유몽인의 글을 모아 어우집(於于集)을 간행했다.
‘푸른 바다의 전설’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소개된 인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2016년 11월 16일부터 2017년 1월 25일까지 방영된 SBS 드라마 스페셜이다. 전지현과 이민호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판타지 사랑 이야기이다.
‘기억은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나만 기억하는 우리의 이야기. 슬퍼지지 않도록, 사라지지 않도록 지킬게, 간직할게, 그리고 돌아갈게’라고 하였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푸른 바다의 전설’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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