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식민지 예술인 특집 / 11 일제에 살해당한 ‘윤동주’)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1939년 소년(少年)에 발표한 윤동주의 시 ‘자화상’의 일부이다
윤동주(尹東柱)는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나서 숭실학교를 다녔다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숭실학교가 폐교되자 문익환 장준하와 함께 요정 광명학원에 편입했다 다시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7세 때 쓴 처녀작 ‘삶과 죽음’ 21세 때 쓴 ‘병아리’ 23세 때 쓴 ‘달을 쏘다’ 등이 있다 24세 때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다가 ‘슬픈 족속’ ‘십자가’ 등의 시가 일제의 검열로 출간이 금지됐다
태평양전쟁으로 강제 동원령이 내려지자 일본 유학을 위해 히라누마 도오쥬우(平沼東柱)로 창씨개명을 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릿쿄대학과 도지샤대학을 다녔다1943년 일제는 윤동주를 독립운동 혐의로 치안유지법으로 체포했다
1945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福岡 刑務所)에서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8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했다 1948년 윤동주가 남긴 시를 모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했다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고 정지용이 서문을 썼다 ‘지나치게 그는 겸허, 온순하였건만, 자기의 시만은 양보하지를 않았다’고 강처중은 발문을 썼다.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창씨개명에 대한 굴욕감으로 조선에서 남긴 마지막 시 ‘참회록’을 남겼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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