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극동국제 군사재판소)
극동국제 군사재판소는 태평양전쟁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전쟁 범죄인들을 심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판소다 1946년 5월부터 1948년 11월까지 교수형 7명, 종신형 16명, 유기금고 2명, 병사 2명, 소추면제 2명 등을 처벌했다
하지만 극동국제 군사재판소는 일본의 역사적 사죄를 이끌어 내지 못했고 '히로히토 텐노'를 처벌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극동국제 군사재판소는 미국이 실험 자료를 받는 조건으로 731 부대장인 '이시이 시로'를 처벌하지 않았다
히로히토(迪宮裕仁)는 다이쇼(大正)가 사망하자 쇼와(昭和) 텐노로 즉위했다 1926년부터 1989년까지 63년 동안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자행했다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에서 교두보로 삼기 위해 전범 히로히토를 기소하지 않았다
이시이 시로(石井 四郎)는 교토제국대학 의학부 출신이다 세균전부대를 설립하여 731부대로 개칭하여 사령관에 임명됐다 미국은 인체실험 자료와 동물실험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전범 이시이 시로를 기소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나치에 부역한 10만 명에게 국민권박탈 금고 사형 등을 감행했고 독일에 저항한 레지스탕스 30만 명을 포상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19세기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자행한 식민 통치를 사과하지도 반성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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