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중국특집 / 3 회하)
회하(淮河)는 허난성의 동백산과 로아차에서 발원한다 안후이성과 장쑤성을 통과하여 홍택호(洪澤湖)에 잠시 머물다가 일부는 황해로 흐르고 일부는 장강으로 유입된다 회하를 화이허강(淮河)이라고 하며 회수(淮水)라고도 한다
회하는 남쪽의 장강(長江), 북쪽의 황하(黃河)와 함께 3대하(三大河)로 불린다 회하가 화베이(華北)와 화난(華南)의 지리적 경계선을 이룬다 남북조시대와 남송시대에 회하를 기준으로 남쪽은 한족이, 북쪽은 이민족이 지배했다
회하는 물길이 복잡하고 홍수가 빈번하여 치수가 어려워 ‘괴하(壊河)’라고 하였다 회하 이북은 강수량이 1,000mm 이하로 밭에서 밀을 재배하고 회하 이남은 강수량이 1,000mm 이상으로 논에서 쌀을 재배한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안자는 ’강남의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강북의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남귤북지'(南橘北枳)라고 하였다 회하 남쪽은 하천교통이 발전했고 회하 북쪽은 육로교통이 발달하여 남선북마(南船北馬)라고 하였다
대운하(大運河)는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2,700km의 운하이다 수나라 양제가 시작하여 원나라 쿠빌라이가 개수했고 명나라 영락제가 완성했다 대운하는 황허와 회하를 연결하는 통제거(通濟渠)와 회하와 창강을 연결하는 영제거(永濟渠)로 이뤄졌다
대운하가 건설되어 남쪽의 상하이, 난징과 북쪽의 수나라 당나라의 수도 시안, 북송의 수도 카이펑이 연결되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대운하 옆으로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쾌속열차 징후철도(京滬鐵路)가 놓여졌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천하를 덮었건만 / 때가 불리했도다, 추도 달리지 않는구나 / 추가 달리지 않으니, 내 어찌하랴 / 우여, 우여, 너를 어찌한단 말인가> 항우는 회하에서 유방에게 포위되자 해하가를 부르며 31세의 나이에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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