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대한민국 정부수립)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으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이념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승만은 1946년 6월 3일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할 것'을 주장하는 정읍발언을 하였다
1945년 12월 16일부터 27일까지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 3개국 외상회의가 개최됐다 미국의 제안으로 한반도에서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결정되어 미소공동위원회가 설치됐다 하지만 이승만 등은 신탁통치를 반대하지 않았다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한반도의 문제가 유엔에 상정되어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결정됐다
1947년 8월 12일 '바티칸 시국'으로부터 초대 주한 교황순찰사로 임명된 패트릭 번 주교는 ‘대한민국을 합법적 독립 국가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교황청 문서를 발표하여 국제연합(UN) 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번 주교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살해됐다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저지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1948년 4월 19일 평양에서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개최했다 남북회의가 성과 없이 실패하자 홍명희 김원봉 백남운 등은 북한에 잔류했다
결국 1948년 5월 10일 극심한 반대 속에서 보통 평등 비밀 직접 원칙에 따라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실시됐다 2년 임기의 200명을 선출하는 총선에서 엄청난 부정투표와 개표부정을 통해 이승만을 추종하는 '대한독립 촉성 국민회'가 55석을 차지하여 제1세력이 되었다 제주도는 4.3 사건으로 선거무효가 되었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7월 20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했다 유엔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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