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의열단과 관동군)
진보는 의열단을 조직하여 투쟁을 전개한 김원봉을 칭찬했다 보수는 친일파의 탄압을 피해 월북한 김원봉을 비난했다 진보는 관동군 장교로 활동한 박정희의 친일행적을 비난했다 보수는 5.16 쿠데타를 자행한 박정희의 독재행위를 칭찬했다
의열단은 3.1운동이 일본의 폭력으로 실패한 것을 목격하고 1919년 11월 9일 김원봉이 조직한 무장단체로 죽여야 할 7가살과 파괴해야할 5가살을 설정했다 박재혁 최수봉 김익상 김상옥 김지섭 나석주 등이 비타협적으로 투쟁했다
김원봉은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조직했고 한국광복군 부사령관과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했다 김원봉은 해방 이후 남북협상에 참여했고 친일파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월북했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유공자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관동군은 괴뢰만주국에 상주(常駐)한 일본제국의 주력부대를 말한다 산해관(山海關)의 동쪽에 주둔한 일본군이라는 뜻이다 중국인과 조선인을 대상으로 731부대 운영했고 항일 독립군을 탄압하는 데 선봉적인 역할을 하였다
박정희는 괴뢰만주국 육군군관학교와 일본제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동군 장요로 복무했다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로 일본 텐노의 신하를 자처했고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김원봉의 항일운동도 월북행위도 모두 역사적인 사실이다 박정희의 친일행적도 경제발전도 모두 역사적인 사실이다 김원봉의 공도 보고 과도 봐야 하며 박정희의 과도 보고 공도 봐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확대하는 것도 왜곡이고 축소하는 것도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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