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전라도]능력자인가? 변절자인가? 나주 출신 ‘신숙주’
서일환<역사 칼럼니스트>
신숙주(申叔舟)는 전남 나주시 노안면 금안동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며 정3품 공조참의를 역임한 신포시(申包翅)이고, 아버지는 숭례문의 편액을 남긴 정2품 대제학을 역임한 신잠(申檣)이다. 고려 때 종1품 세자사를 역임한 정가신이 원나라 쿠빌라이로부터 하사받은 금으로 된 안장을 가져왔다고 하여 금안동이 되었다. 7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금안동(禽安洞)은 ‘숲이 우거져 새들의 낙원’이라는 뜻으로 영암 구림마을, 정읍 무성마을과 함께 호남 3대 명촌(名村) 중의 하나이다.
신숙주는 초시와 복시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정인지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했다, 중국어, 일본어, 몽고어, 여진어, 큐슈어, 인도어, 아라비아어, 이두어까지 8개 국어에 능통했다. 일본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와서 조선 최초의 일본 안내서인 ‘해동제국기’를 저술했다. 정인지,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집현전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기여했고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훈민정음해례본을 편찬했다. 세종의 총애를 받아 정3품 직제학을 역임했다.
▲8개 국어 능통 한글 창제 공헌
세종은 신하들에게 세자인 문종과 세손인 단종의 앞날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승하했다. 신숙주는 문종이 즉위하자 세종실록을 편찬했고 단종이 즉위하자 정3품 부제학이 되었다. 신숙주는 단종의 즉위를 명나라에 알리는 사은사 수양대군을 호송하여 명나라 베이징을 방문했다.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의 묘지 앞에서 수양대군과 신숙주는 반란을 꿈꾸었다. 정난지변(靖難之役)은 영락제가 4년간의 내전 끝에 조카이자 2대 황제 건문제를 쫓아내고 황위를 빼앗은 반란이다. 간신을 몰아내고 제실의 난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정난(靖難)’이라고 칭한다.
신숙주는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김종서와 황보인을 제거하고 정난공신에 책록됐고 단종을 추방하고 수양대군을 추대하여 좌익공신에 책록됐다. 세조 때 종2품 대제학 정2품 병조판서와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단종 복위 운동을 적발하여 단종과 금성대군의 처형에 앞장섰다. 세조의 명을 받아 동국통감과 동국정운을 편찬했고 다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정1품 영의정으로 승진했다. 세조는 ‘당태종에게는 위징이 있고, 나에게는 숙주가 있다’라고 했다. 동생 신말주는 단종이 물러나자 수양대군의 즉위를 반대하며 처가인 전라도 순창으로 낙향하여 귀래정을 짓고 은둔했다
▲ ‘기회에 능한 변절자’ 평가
신숙주는 예종이 즉위하자 남이와 강순의 역모를 평정하여 익대공신에 책록됐고 예종이 요절하자 성종을 추대하여 좌리공신에 책록됐다. 다시 영의정이 되어 재직 중에 58세의 나이에 ‘저승 가서 읽을 책 몇 권을 같이 관에 넣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인생이란 마침내 이에 그치고 마는가!’라는 짧은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성종의 묘정에 배향됐고, 부조지전을 받아 불천지위를 받았다. ‘몽유도원도의 찬문’과 시문집인 ‘보한재집’, 여진족 정벌기인 ‘북정록’, 일본 체험기인 ‘해동제국기’ 등이 전해진다. 하지만 역사에서 역적으로 단죄되어 신숙주의 저서와 작품은 대부분 인멸됐다.
신숙주는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6명의 임금을 섬겼고 정난공신, 좌익공신, 익대공신, 좌리공신 등 4번이나 공신에 책록됐다. 조선 최고의 ‘문무겸전의 호걸’이라는 극찬을 받았고 조선 최고의 ‘기회에 능한 변절자’라는 오명을 동시에 받았다. 백성들은 세종, 문종, 단종을 배반하고 세조에 충성하는 신숙주를 미워했다. 숙주나물은 빨리 상한다는 특성으로 변절자 신숙주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녹두는 콩과에 속하는 일년생 초본식물이며 녹두를 시루에 담아 물을 주어 싹을 내어 먹는 나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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