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윤상원 열사)
윤상원은 1980년 봄에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주택은행 봉천동 지점에 취직했다 서울의 봄에 신군부의 출현에 분노하여 사직서를 던지고 광주로 내려와서 들불야학의 강사가 되었다
-선배기자 : 자네는 졸업하고 서울 은행에 취직했다던데 여기에 웬일이야?
-윤상원 : 바른 일을 하려고 내려왔죠 선배님도 바른 글도 쓰지 못하는 기자 나부랭이 때려치워요
1980년 5월 초에 윤상원을 만난 선배 겸 기자의 회고를 얼마 전에 들었다 윤상원은 전두환의 만행에 항거한 5.18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계엄군의 학살로 사망했다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백기완의 시를 황석영이 개사하여 김종률이 작곡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헌정됐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5.18 기념식에서 제창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를 시켰다
전남대학교 '민주화'의 길을 조성하고 있다 사회대학에서 윤상원 열사 기념조형홀을 조성했다 법대는 박관현, 농대는 윤한봉, 인문대는 김남주, 자연대는 박승희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싸우다 산화했다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싸우다가 쓰러진 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추모하는 대열에 작은 벽돌 하나를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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