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안중근 특집 2 '조마리아')

역사야톡 2020. 6. 21. 19:55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안중근 특집 2 '조마리아')

안중근 의사는 190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1909년 10월 26일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參謀中將)으로서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에 수감되어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네가 만약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 안중근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편지인지 근거나 기록은 없다

<이등박문은 수많은 한인을 살해하였는데 안중근이가 이등박문 1인을 죽인 것이 무슨 죄요, 일본 재판소가 각국 변호사를 불납(不納)한 것은 무지가 극함이다> 1910년 3월 2일 대한매일신보에 조마리아의 주장이 실렸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의 본명은 조성녀(趙姓女)이며 세례명이 마리아(瑪利亞)이다 안중근이 만주로 망명하자 '집안일은 생각지 말고 최후까지 남자답게 싸우라'고 격려를 하였다

조마리아는 아들 안중근이 처형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게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모든 가족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해방이 되자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장남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차남 안정근은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전투에 참가했고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삼남 안공근은 김구와 더불어 한인애국단에 참여하여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가 실효적 지배를 하던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러시아의 법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가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을 빌미로 일본법에 따라 불법적인 재판을 받았다

안중근 의사는 '비정규군도 교전자격이 있다'는 1907년 만국평화회의의 규정에 따라 교전 중에 잡힌 포로로 보호를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일제는 독립군 포로로 대우하지 않고 일반 형사범으로 부당하게 처리했다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은 일본의 식민통치 기관으로 안중근 의사의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고무라 주타로 외무대신이 사형을 언도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일본인 판사, 일본인 검사, 일본인 변호사, 일본인 방청객이 안중근을 불법적으로 살인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 ~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고 안중근 의사는 유언을 남기고 순국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안중근 #조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