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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주골] '당신의 마음'과 덕진다리 전설

역사야톡 2019. 5. 27. 14:39

[낭주골] '당신의 마음'과 덕진다리 전설

 

서일환

영암군 서호면 산골정마을 生

전 광주우리들병원 행정원장

광주전남의료발전 협의회 회장

상무힐링재활병원 행정원장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 하나 /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 아아아 아아아 /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김지평이 작사하고 김학송이 작곡하여 가수 방주연이 노래한 ‘당신의 마음’의 가사이다. 방주연의 ‘당신의 마음’은 하춘화의 ‘영암아리랑’, 이미자의 ‘낭주골 처녀’와 함께 영암을 대표하는 노래로 평가받고 있다.

 

작사가 김지평은 전남 영암 덕진 출신으로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 유연실의 ’사랑이 아니어도 좋으리‘ 등을 작사했다. 작곡가 김학송은 평남 진남포 출신으로 조미미의 ‘서산 갯마을’, 나훈아의 ‘강촌에 살고 싶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등을 작곡했다. 가수 방주연은 경북 상주 출신으로 ‘슬픈 연가’로 데뷔하여 MBC 10대 가요제 가수상, KBS 10대 가요제 가수상, TBC 7대 가수상 4회 연속 수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당신의 마음’은 1972년 영암군 덕진강변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대중가요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서정적인 노래이며 1973년 TBC에서 작사 대상을 수상했다. 덕진강변은 월출산의 계곡물과 영산강의 바닷물이 교차하여 모래가 고와 단옷날이면 많은 주민들이 찾아와서 모래찜질을 하였다. 영산강 하굿둑이 만들어지면서 덕진강변도 사라지고 모래찜질 풍경도 사라졌다.

 

영산강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장마철의 집중 호우로 인한 하천의 범람으로 해마다 피해가 반복됐다. 목포시 옥암동과 영암군 삼호면을 연결하는 하굿둑을 1978년 착공하여 1981년 준공했다. 하굿둑 건설로 거대한 인공호수와 백령도보다 조금 넓은 농경지가 형성됐고 목포 인근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하지만 하굿둑으로 인해 영산강의 수질이 악화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덕진나루는 영암, 강진, 해남, 완도, 진도 사람들이 한양을 오고갈 때는 꼭 지나가야 하는 길목이었다. 하지만 덕진나루는 비만 오면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인해 징검다리를 건널 수 없었다. 신라시대에 나루에서 주막을 하던 덕진(德津)이라는 여인이 다리를 놓을 결심을 하고 항아리에 돈을 모으다가 요절했다. 영암 원님의 꿈에 덕진 여인이 나타나 항아리에 모아둔 돈으로 다리를 놓아 주라고 부탁했다. 사또는 다리를 놓았고 덕진교(德津橋)라고 부르게 되었다.

 

1813년 영암 사람들은 덕진교 북쪽에 덕진 여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대석교 창주 덕진지비(大石橋 創主 德津之碑)’를 세우고 단옷날이 되면 덕진 여인의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또한 영암 출신인 최덕지는 정3품 예문과 직제학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거부하고 고향 덕진에 은거하며 영보정(永保亭)을 창건했다. 한석봉은 영암 출신인 스승 신희남을 따라 덕진으로 내려와서 ‘영보정(永保亭)’ 현판을 남겼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며 영보정에서 ‘등영보정(登永保亭)’이라는 시를 남겼다.

 

서거정은 ‘덕진(德津)에는 물이 얕아도 다리가 아직 있고 도갑(道岬)에는 비석이 남았는데 글씨가 반은 없구나’라고 글을 남겼다. 서거정은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여섯 임금을 모시고 조선 최초로 양관 대제학을 역임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하지만 덕진 여인의 아름다운 전설은 각박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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