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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안중근 12 '묘지')

역사야톡 2020. 7. 6. 19:56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안중근 12 '묘지')

<안중근은 경술년 양력 3월 26일 오전 10시에 형장에 서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죽고, 동양평화를 위해 죽는데 어찌 죽음이 한스럽겠소?" 하였다. 마침내 한복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형장으로 나아가니, 나이 32세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에 쓰인 안중근 의사에 대한 평가이다 한국통사는 1863년 고종의 즉위부터 1911년 '105인 사건'까지 사건들을 시대순으로 정리하고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일제의 침략을 폭로했다

일제는 하얼빈을 일본의 조차지인 치외법권 지역으로 주장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를 군대가 해산됐다면서 포로로 인정하지 않았다 을사늑약에 따라 한국인의 보호권이 일본에 있다면서 안중근 의사를 뤼순감옥에 구속했다

결국 안중근 의사는 판사부터 검사 변호사 방청객 통역관까지 모두 일본인으로 구성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형식적인 재판으로 1910년 2월 14일에 사형 선고를 받고 32세의 나이로 3월 26일 오전 10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라며 안중근 의사는 유언을 남겼다 일제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가족에게 넘겨주지 않고 뤼순감옥 인근 죄수 묘지에 암매장했다

일제가 항복하자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으려고 노력하였지만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가 타이완으로 쫓겨나고 한국전쟁으로 중단됐다 안중근 의사는 효창공원의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의사 묘역에 비석도 유해도 없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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