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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유학 4 공자의 제자)

역사야톡 2020. 7. 30. 19:58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유학 4 공자의 제자)

<나는 15세가 되어서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가 되어서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고, 40세가 되어서는 판단에 혼돈을 일으키지 않았고, 50세가 되어서는 천명을 알았고, 60세가 되어서 귀로 들으면 그 뜻을 알았고, 70세가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대로 하여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았다>고 공자는 말씀했다

공자는 제자가 3,000명이 넘었다고 하며 뛰어난 제자를 가리켜 '72현(賢)'이라고 칭했다 사마천은 '사기'의 '중니제자열전'에 공자의 제자 중 뛰어난 10명을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 하였다

'덕행(德行)에는 안회(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 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冉有), 자로(子路), 문학에는 자유(子游), 자하(子夏)가 뛰어나다'라고 공자는 제자들을 평가했다

공자에 비해 20세 정도 차이가 나면 제(弟)라고 하고 40세 정도 차이가 나면 자(子)라고 한다 공자를 비롯해 공자의 학맥을 계승한 안회, 증자, 자사, 맹자를 동양의 오성(五聖)이라고 한다

'안회(顔淵)'는 공자가 제자 중에서 가장 아꼈으나 공자보다 일찍 죽었다 공자는 안회의 죽음을 듣고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天喪予)'라고 탄식했다 하루에 밥 한 그릇, 물 한 그릇만 먹고 버텼다는 단사표음(簞食瓢飮)의 주인공이다

'자로(子路)'는 공자의 제자 중 최고 연장자이며 공자와 14년 동안 천하주유와 망명생활을 함께하였다 공자가 노(魯)나라로 돌아갈 때 위(魏)나라에 남아서 가신이 되었다 위나라의 반란에 휘말려서 시체가 젓갈로 담가졌다

'자공(子貢)'은 공자의 제자 중 가장 재산이 많았으며 전국을 주유할 때 물질적 후원자였다 의로운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고 그 이익으로 세상을 구한 이리제세(以利濟世)로 평가하며 공자가 사망하자 무덤에서 6년을 보내면서 수행했다

'증자(曾子)'는 대학(大學)의 저자이며 공자의 제자 중 적통으로 인정되며 공자-증자-자사-맹자를 유학의 적통으로 평가한다 스승인 공자의 '논어'를 비롯해 증자의 '대학', 제자인 자사의 '중용', 손제자인 맹자의 '맹자'를 4서(四書)라고 한다

'자사(子思)'는 중용(中庸)의 저자이며 공자의 손자이자 증자의 제자이며 맹자의 스승이다 자사는 '위나라를 살펴보니 이른바 임금은 임금답지 않고 신하는 신하답지 않다'라며 경계했다 위나라가 멸망하자 노(魯)나라와 송(宋)나라를 주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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