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2 ‘폐모살제’)
폐모살제(廢母殺弟)는 15대 광해군(光海君)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위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살해한 것을 말한다 능양군은 폐모살제를 명분으로 인조반정(仁祖反政)을 자행했다
선조는 중종과 창빈안씨 서자인 덕흥군의 3남으로 태어나서 하성군에 봉해졌다 명종이 후사가 없이 사망하며 하성군을 후사로 지목하여 14대 임금으로 즉위했다 조선 최초로 방계승통의 임금이 되었다
선조의 첫 번째 정비 의인왕후는 인종비 명종비 손회세자빈을 모셨고 임해군과 광해군을 키웠다 후궁 공빈김씨가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고 산후통으로 사망했다 후궁 인빈김씨가 신성군과 정원군을 낳았다
선조는 정비 의인왕후가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32살 연하인 19세의 인목왕후를 계비로 책봉했다 계모인 인목왕후는 왕세자 광해군보다 9살이나 어렸다 인목왕후가 정명공주에 이어 영창대군을 낳았다
선조는 8명의 부인에게 14남 11녀를 낳았고 영창대군은 유일한 적자이다 선조는 방계승통의 정통성 부재를 적통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였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에 세자가 되었으나 명으로부터 책봉을 받지 못했다
유영경 남이공 김신국 등 소북파는 영창대군을 지지했고 정인홍 이산해 기자헌 등 대북파는 광해군을 지지했다 선조가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인목왕후는 광해군의 전위(傳位)를 선언하고 인목대비가 되었다
광해군 즉위 5년째 박응서가 인목대비의 친정아버지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임금으로 추대하려는 음모를 자백하여 계축옥사가 일어났다 김제남은 사사됐고 영창대군은 폐서인되어 강화도에 유배됐고 9세의 나이에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광해군은 선조의 계비이자 자신의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비하고 서궁(西宮)에 유폐했다 대비로서의 특권과 대우를 박탈했다 인목대비는 인조반정으로 인목대비로 복위되어 10년 동안 지내다가 49세에 사망하여 선조와 의인왕후 옆에 안장됐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권력을 빼앗긴 서인들은 폐모살제를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켜서 능양군을 인조로 추대했다 인조는 반정공신에 의해 임금이 되어 꼭두각시로 전락하였고 조선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인조특집 #폐모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