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전라도] 굽이굽이 한 많은 ‘영산강’ 3백리
서일환 언론학박사·첨단재활 요양병원 본부장
영산강 굽이 도는 푸른 물결 다시 오건만
똑딱선 서울 간 님 똑딱선 서울 간 님
기다리는 영산강 처녀
못 믿을 세월 속에 안타까운 청춘만 가네
길이 멀어 못 오시나 오기 싫어 아니 오시나
아~아~푸른 물결 너는 알지 말을 해 다오
1968년 발표된 천지엽 작사, 송운선 작곡, 송춘희 노래 ‘영산강 처녀’의 가사이다. 가수 송춘희는 1967년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라는 ‘수덕사의 여승’을 불러 무명 가수에서 10대 가수로 올랐다. 2000년 10월 17일 광주광역시 동구와 화순을 잇는 너릿재 공원에 ‘영산강 처녀’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영산강 처녀’를 비롯해 ‘영산강아 말해다오’, ‘영산강 편지’, ‘영산강 뱃노래’, ‘울어라 영산강’, ‘낭주골 처녀’,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목포의 달밤’, ‘목포행 완행열차’ 등 영산강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매우 많다. 영산강은 전남 담양군에서 발원하여 나주평야를 지나 목포를 통해 서해로 3백리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호남의 젖줄, 한 많은 영산강 삼백리
영산강은 한강, 낙동강, 금강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강의 하나이다. 전남 담양군 용추 계곡에서 발원하여 광주에서 광주천과 황룡강이 합수하며, 나주에서 드들강과 합수한다. 나주평야와 영암, 함평, 목포를 거쳐 영산강 하굿둑을 지나 서해로 흘러간다. 광주천과 황룡강이 영산강과 합수하는 구간을 극락강(極樂江)이라고 부른다.
영산포(榮山浦)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설치된 조창은 왜구 침입으로 폐지됐다. 흑산도에 왜구들이 창궐하자 주민들을 영산포로 이주하여 삭힌 홍어가 유명하게 되었다. 영산포는 일제 강점기에 목포를 오고 가는 동력선이 출항하여 크게 발전했으나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어 크게 퇴락했다. 지금은 금성시에 이어 나주시로 편입됐다.
목포(木浦)는 한반도 서남부의 항구 도시로 영산강 하구에 위치했다. 1897년에 목포항이 개항했고 1914년에 호남선 철도가 개설됐다. 1932년에 김, 면화, 쌀, 소금 등 일김삼백(一黑三白)의 집산지로 인구 6만 명의 조선 6대 도시로 성장했다. 현재는 광주, 전주, 익산, 여수, 순천, 군산에 이어 호남의 7대 도시로 전락했다.
영산강 하굿둑은 전남 목포시 옥암동과 영암군 나불리를 연결하는 인공 방조제이다. 영산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1978년에 착공하여 1981년에 완공했다. 영산강 상류에는 장성호, 담양호, 나주호 등 댐을 막았고 하류에는 하굿둑을 막았다. 하천의 범람을 막고 농토를 확대했지만, 환경은 심각하게 파괴됐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산강 8경’
국토해양부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와 익산지방 국토관리청은 저녁노을 아름다운 영산강 하구언, 식영정에서 바라본 곡강, 석관정에서 바라본 황포돛배, 사계절 들꽃 피는 죽산보, 황금물결 출렁이는 나주평야, 황룡강과 만나는 승촌보, 선창산과 극락강이 만나는 풍영정, 대숲을 감싸는 담양습지 등을 ‘영산강 8경’으로 선정했다.
전라도는 1019년 고려 현종이 전주와 나주의 첫 자를 따서 전라도라고 명명했다. 900년이 지나서 전남과 전북이 분리됐고 다시 100년이 지나서 전남과 광주가 분리됐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은 전라도의 제2의 애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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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언론학박사·첨단재활 요양병원 본부장
영산강 굽이 도는 푸른 물결 다시 오건만
똑딱선 서울 간 님 똑딱선 서울 간 님
기다리는 영산강 처녀
못 믿을 세월 속에 안타까운 청춘만 가네
길이 멀어 못 오시나 오기 싫어 아니 오시나
아~아~푸른 물결 너는 알지 말을 해 다오
1968년 발표된 천지엽 작사, 송운선 작곡, 송춘희 노래 ‘영산강 처녀’의 가사이다. 가수 송춘희는 1967년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라는 ‘수덕사의 여승’을 불러 무명 가수에서 10대 가수로 올랐다. 2000년 10월 17일 광주광역시 동구와 화순을 잇는 너릿재 공원에 ‘영산강 처녀’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영산강 처녀’를 비롯해 ‘영산강아 말해다오’, ‘영산강 편지’, ‘영산강 뱃노래’, ‘울어라 영산강’, ‘낭주골 처녀’,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목포의 달밤’, ‘목포행 완행열차’ 등 영산강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매우 많다. 영산강은 전남 담양군에서 발원하여 나주평야를 지나 목포를 통해 서해로 3백리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호남의 젖줄, 한 많은 영산강 삼백리
영산강은 한강, 낙동강, 금강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강의 하나이다. 전남 담양군 용추 계곡에서 발원하여 광주에서 광주천과 황룡강이 합수하며, 나주에서 드들강과 합수한다. 나주평야와 영암, 함평, 목포를 거쳐 영산강 하굿둑을 지나 서해로 흘러간다. 광주천과 황룡강이 영산강과 합수하는 구간을 극락강(極樂江)이라고 부른다.
영산포(榮山浦)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설치된 조창은 왜구 침입으로 폐지됐다. 흑산도에 왜구들이 창궐하자 주민들을 영산포로 이주하여 삭힌 홍어가 유명하게 되었다. 영산포는 일제 강점기에 목포를 오고 가는 동력선이 출항하여 크게 발전했으나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어 크게 퇴락했다. 지금은 금성시에 이어 나주시로 편입됐다.
목포(木浦)는 한반도 서남부의 항구 도시로 영산강 하구에 위치했다. 1897년에 목포항이 개항했고 1914년에 호남선 철도가 개설됐다. 1932년에 김, 면화, 쌀, 소금 등 일김삼백(一黑三白)의 집산지로 인구 6만 명의 조선 6대 도시로 성장했다. 현재는 광주, 전주, 익산, 여수, 순천, 군산에 이어 호남의 7대 도시로 전락했다.
영산강 하굿둑은 전남 목포시 옥암동과 영암군 나불리를 연결하는 인공 방조제이다. 영산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1978년에 착공하여 1981년에 완공했다. 영산강 상류에는 장성호, 담양호, 나주호 등 댐을 막았고 하류에는 하굿둑을 막았다. 하천의 범람을 막고 농토를 확대했지만, 환경은 심각하게 파괴됐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산강 8경’
국토해양부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와 익산지방 국토관리청은 저녁노을 아름다운 영산강 하구언, 식영정에서 바라본 곡강, 석관정에서 바라본 황포돛배, 사계절 들꽃 피는 죽산보, 황금물결 출렁이는 나주평야, 황룡강과 만나는 승촌보, 선창산과 극락강이 만나는 풍영정, 대숲을 감싸는 담양습지 등을 ‘영산강 8경’으로 선정했다.
전라도는 1019년 고려 현종이 전주와 나주의 첫 자를 따서 전라도라고 명명했다. 900년이 지나서 전남과 전북이 분리됐고 다시 100년이 지나서 전남과 광주가 분리됐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은 전라도의 제2의 애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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