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민씨족당 특집 / 7 순종의 처남이자 순명황후의 오빠인 '민영익')
민영익(閔泳翊)은 민태호(閔台鎬)의 아들이자 순명왕후의 오빠이다 민태호는 아버지 초상을 당해서도 관을 살 돈이 없어 시신을 짚자리로 말아 출상할 정도로 가난했다 먼친척 되는 명성왕후가 왕비로 책봉되자 아버지 민태호와 작은아버지 민규호가 권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민승호는 명성왕후의 생부인 민치록의 양자로 입적되어 명성왕후의 양오빠가 되었다 민승호가 폭사하여 민치록과 민승호의 대가 끊어지자 민영익이 민치록의 양자인 민승호의 양자로 입적됐다 민영익은 명성왕후의 조카이자 유일한 혈육이 되었다
민영익은 고종과 명성왕후의 총애를 받으며 불과 20세의 나이에 인사권, 병권, 재정권, 외교권을 손에 쥐고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주창했다 민영익은 민씨족당의 핵심이 되어 김옥균 홍영식 어윤중 등과 더불어 개화정책을 추진했다
민영익은 온건개화파로 청나라에 의존했고 김옥균은 강경개화파로 일본에 의존했다 온건개화파는 동양의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고 강경개화파는 동양의 지배질서를 파기하고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
급진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천하로 실패하고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홍영식은 처형됐다 급진개화파로부터 아버지 민태호는 살해됐고 민영익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민영익은 고종과 명성왕후의 친러정책을 반대하다가 고종 폐위음모의 주범으로 몰려 중국으로 망명했다 민영익은 정치적 후원자인 명성왕후마저 살해되자 세도정치 복원을 포기하고 술과 서화를 즐기다가 5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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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익(閔泳翊)은 민태호(閔台鎬)의 아들이자 순명왕후의 오빠이다 민태호는 아버지 초상을 당해서도 관을 살 돈이 없어 시신을 짚자리로 말아 출상할 정도로 가난했다 먼친척 되는 명성왕후가 왕비로 책봉되자 아버지 민태호와 작은아버지 민규호가 권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민승호는 명성왕후의 생부인 민치록의 양자로 입적되어 명성왕후의 양오빠가 되었다 민승호가 폭사하여 민치록과 민승호의 대가 끊어지자 민영익이 민치록의 양자인 민승호의 양자로 입적됐다 민영익은 명성왕후의 조카이자 유일한 혈육이 되었다
민영익은 고종과 명성왕후의 총애를 받으며 불과 20세의 나이에 인사권, 병권, 재정권, 외교권을 손에 쥐고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주창했다 민영익은 민씨족당의 핵심이 되어 김옥균 홍영식 어윤중 등과 더불어 개화정책을 추진했다
민영익은 온건개화파로 청나라에 의존했고 김옥균은 강경개화파로 일본에 의존했다 온건개화파는 동양의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고 강경개화파는 동양의 지배질서를 파기하고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
급진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천하로 실패하고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홍영식은 처형됐다 급진개화파로부터 아버지 민태호는 살해됐고 민영익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민영익은 고종과 명성왕후의 친러정책을 반대하다가 고종 폐위음모의 주범으로 몰려 중국으로 망명했다 민영익은 정치적 후원자인 명성왕후마저 살해되자 세도정치 복원을 포기하고 술과 서화를 즐기다가 5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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