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추사 김정희 특집 / 8 김정희와 해남 대흥사)
추사 김정희는 윤상도의 상소 초안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첫 번째 유배를 당했다 한양을 떠나 해남 대흥사를 거쳐 제주도로 건너갔다 대흥사(大興寺)는 전남 해남군 두륜산에 위치한 천년고찰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대흥사는 신라 때 정관존자가 창건하여 자장율사와 도선국사가 증건했다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으로 유언에 따라 의발이 보관됐고 국보 제308호 마애여래좌상과 보물 1347호 서산대사탑 등 9점의 보물이 보존됐다
서산대사는 ‘대흥사는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만 년 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이라고 하였다 대흥사는 풍담스님부터 초의스님까지 13분의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됐고 만화스님부터 범해스님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배출됐다
초의선사는 무안에서 태어나서 나주 운흥사에서 출가하여 영암 월출산에서 득도했다 해남 대흥사의 대종사가 되어 일지암에서 40년간 수도하며 차를 중흥시켰다 초의선사는 혜장선사 김정희 정약용 허련 흥선대원군 등과 교류했다
김정희가 지천명의 나이에 제주도로 유배 가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러 초의선사를 만났다 대흥사에서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을 보고 새로 써줄 터이니 떼어버리라고 하고 새로 무량수각(無量壽閣)의 현판을 써주었다
김정희가 회갑을 넘은 나이에 해배되어 한양으로 가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러 초의선사를 만났다 김정희는 초의선사에게 자신의 편액을 떼고 다시 원교의 편액을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김정희는 절해고도 제주도에서 인격이 성숙한 것이다
원교 이광사는 호조판서 이경직의 현손이고, 예조판서 이진검의 아들이다 이광사는 백부 이진유의 나주괘서 사건으로 연좌되어 23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생부 이진검은 신유옥사로 강진으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백부 이진유는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어 전라도 신지도로 이배됐다
이광사는 정제두에게 양명학을 배웠고 윤순에게 글씨를 배워 원교체(圓嶠體)를 완성했다 원교체는 중국의 서체를 모방하지 않은 조선만의 고유한 서체로 동국진체(東國眞體)라고 한다 아들 이긍익은 벼슬을 하지 않고 역사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남겼다
이광사는 천은사 선운사 내소사 편액 등 유배지 일대의 많은 사찰에 글을 남겼다 대흥사에 추사 김정희의 무량수전 편액과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 편액이 함께 걸려 있다 추사 김정희는 성리학 중심의 노론이고 원교 이광사는 양명학 중심의 소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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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는 신라 때 정관존자가 창건하여 자장율사와 도선국사가 증건했다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으로 유언에 따라 의발이 보관됐고 국보 제308호 마애여래좌상과 보물 1347호 서산대사탑 등 9점의 보물이 보존됐다
서산대사는 ‘대흥사는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만 년 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이라고 하였다 대흥사는 풍담스님부터 초의스님까지 13분의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됐고 만화스님부터 범해스님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배출됐다
초의선사는 무안에서 태어나서 나주 운흥사에서 출가하여 영암 월출산에서 득도했다 해남 대흥사의 대종사가 되어 일지암에서 40년간 수도하며 차를 중흥시켰다 초의선사는 혜장선사 김정희 정약용 허련 흥선대원군 등과 교류했다
김정희가 지천명의 나이에 제주도로 유배 가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러 초의선사를 만났다 대흥사에서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을 보고 새로 써줄 터이니 떼어버리라고 하고 새로 무량수각(無量壽閣)의 현판을 써주었다
김정희가 회갑을 넘은 나이에 해배되어 한양으로 가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러 초의선사를 만났다 김정희는 초의선사에게 자신의 편액을 떼고 다시 원교의 편액을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김정희는 절해고도 제주도에서 인격이 성숙한 것이다
원교 이광사는 호조판서 이경직의 현손이고, 예조판서 이진검의 아들이다 이광사는 백부 이진유의 나주괘서 사건으로 연좌되어 23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생부 이진검은 신유옥사로 강진으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백부 이진유는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어 전라도 신지도로 이배됐다
이광사는 정제두에게 양명학을 배웠고 윤순에게 글씨를 배워 원교체(圓嶠體)를 완성했다 원교체는 중국의 서체를 모방하지 않은 조선만의 고유한 서체로 동국진체(東國眞體)라고 한다 아들 이긍익은 벼슬을 하지 않고 역사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남겼다
이광사는 천은사 선운사 내소사 편액 등 유배지 일대의 많은 사찰에 글을 남겼다 대흥사에 추사 김정희의 무량수전 편액과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 편액이 함께 걸려 있다 추사 김정희는 성리학 중심의 노론이고 원교 이광사는 양명학 중심의 소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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