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한명회)
한명회는 태어날 때 복부에 북두칠성 모양의 점들이 있었다고 한다 38세에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여 수양대군의 측근이자 책사가 되었다 사육신의 처형, 이시애 난의 진압, 남이의 처형, 성종의 즉위, 폐비윤씨 처형 등에 적극 가담했다
한명회는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정난공신이 되었고 세조의 즉위에 공헌하여 좌익공신이 되었다 남이의 옥사를 처리하여 익대공신이 되었고 성종으로 추대하여 좌리공신이 되었다 한명회는 네 차례나 공신이 되었다
한명회는 예종과 성종의 장인이며 연산군의 외할아버지이다 셋째 딸인 예종의 계비 장순왕후는 인성대군을 낳고 요절했고 넷째 딸인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는 후사도 없이 요절했다
장순왕후는 해양대군과 혼인하여 인성대군을 낳고 17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남편이 예종으로 즉위하여 왕후로 추존됐다 공혜왕후는 자을산군과 혼인하여 남편이 성종으로 즉위하자 왕후가 되었으나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19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한명회는 두 명의 임금을 사위로 만들어 영의정을 역임했고 70세가 되어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하지만 갑자사화 당시 폐비윤씨 사건의 책임으로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토막 내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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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는 태어날 때 복부에 북두칠성 모양의 점들이 있었다고 한다 38세에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여 수양대군의 측근이자 책사가 되었다 사육신의 처형, 이시애 난의 진압, 남이의 처형, 성종의 즉위, 폐비윤씨 처형 등에 적극 가담했다
한명회는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정난공신이 되었고 세조의 즉위에 공헌하여 좌익공신이 되었다 남이의 옥사를 처리하여 익대공신이 되었고 성종으로 추대하여 좌리공신이 되었다 한명회는 네 차례나 공신이 되었다
한명회는 예종과 성종의 장인이며 연산군의 외할아버지이다 셋째 딸인 예종의 계비 장순왕후는 인성대군을 낳고 요절했고 넷째 딸인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는 후사도 없이 요절했다
장순왕후는 해양대군과 혼인하여 인성대군을 낳고 17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남편이 예종으로 즉위하여 왕후로 추존됐다 공혜왕후는 자을산군과 혼인하여 남편이 성종으로 즉위하자 왕후가 되었으나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19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한명회는 두 명의 임금을 사위로 만들어 영의정을 역임했고 70세가 되어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하지만 갑자사화 당시 폐비윤씨 사건의 책임으로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토막 내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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