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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육사 특집 / 6 이육사)

역사야톡 2021. 3. 28. 19:56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육사 특집 / 6 이육사)

이육사는 1904년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진성이씨 이가호와 김해허씨 허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원록이고 아명은 원삼이다 조부는 보문의숙 초대 교장 이중직이고, 외조부는 독립운동가 허형이다

이육사는 17세에 안일양과 결혼을 하고 영천 백원학원 교사로 9개월간 근무했다 20세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 킨죠(錦城) 예비학교를 다니다가 건강문제로 이듬해 돌아와서 베이징으로 건너갔다

이육사는 정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으로 대구형무소에서 수인번호 264번으로 3년간 복역했다 이육사는 중외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이활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에 첫 번째 시 ‘말’을 발표하고 조선일보 기자로 전직했다

말 / 이육사

흐트러진 갈기
후줄근한 눈
밤송이 같은 털
오! 먼 길에 지친 말
채찍에 지친 말이여!

수굿한 목통
축 처―진 꼬리
서리에 번쩍이는 네 굽
오! 구름을 헤치려는 말
새해에 소리칠 흰말이여!

이육사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영향으로 일어난 대구격문투쟁의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됐다 군사정치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복역했다 조선일보를 사퇴하고 괴뢰만주국 수도 펑텐으로 건너갔다

이육사는 의열단 윤석주를 만나 조선혁명군 군사정치학교 1기생으로 입교하여 군사간부 교육을 받고 2기생을 모집하기 위해 귀국하여 체포됐다 1943년 중국 베이징에서 어머니 제사를 지내기 위해 귀국하던 길에 체포됐다

이육사는 베이징 감옥으로 압송되어 이듬해 순국했다 동생 이원창이 유해를 수습하여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1960년 고향 안동으로 이장했다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39년 동안 17번이나 감옥을 다녀왔고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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