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일본여행기 / 8 천년수도 ‘교토’)

역사야톡 2019. 6. 30. 16:01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일본여행기 / 8 천년수도 ‘교토’)

 

<기요미즈데라>

‘기요미즈데라(清水寺)’는 778년 헤이안 시대 초기에 교토에 설립된 사원으로 '맑은 물'이라는 뜻이다 에도 막부의 창업자인 이에야스의 손자이자 에도 막부의 3대 쇼군인 이에미쓰의 명령으로 재건했다

 

기요미즈데라는 언덕 앞으로 돌출되어 139개 기둥으로 받치도록 설계된 건축물에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재건됐다 ‘십일면천수관음상’을 모시고 있는 본당(本堂)은 국보로 지정됐다 신세계7대 불가사의의 후보가 되었으나 탈락했다

 

<주라쿠다이>

‘주라쿠다이(聚楽城)’는 히데요시가 교토에 축성한 대저택이다 금박을 입힌 기와를 사용하여 화려하고 아름다운 저택으로 정무를 보는 혼마루를 중심으로 니노마루를 건축하고 주위에 해자를 만들어 방어하는 성이다

 

주라쿠다이에는 일본의 다조(茶祖)로 불리우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인 센노 리큐(千利休)의 저택도 함께 지었다 센노 리큐는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주라쿠다이에서 자결했다 히데요시는 주라쿠다이를 철거하여 후시미성을 쌓았다

 

<후시미성>

‘후시미성(伏見城)’은 교토 우지 강 연안에 히데요시가 주라쿠다이를 이축하여 축성했다 지진으로 성이 무너지자 고하타산(木幡山)에 새롭게 축성했다 히데요시는 후시미성에서 사망했고 세키가하라 전투로 소실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재건했다

 

‘다섯 걸음마다 절이 하나씩 있고 열 걸음마다 누각이 하나씩 있는데 ~ 왜놈들이 얼마나 제 백성을 혹사시켰는지 족히 상상하고도 남았다’고 강항(姜沆)이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가서 후시미성을 직접 보고 ‘간양록(看羊錄)’에 기록했다

 

<니조성>

'니조성(二条城)'은 에도 시대에 교토에 축성된 윤곽식 평성(坪城)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니노마루 어전이 국보로 지정됐고 정원은 특별 명승지로 지정됐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복도를 걸을 때 새 울음소리가 나도록 설계됐다

 

니조성은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거처하기 위해 지어졌고 3대 쇼군인 이에미쓰가 에도에 입성하자 쇼군이 없는 성으로 버려졌고 천수도 소실됐다 니조성에서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867년 대정봉환을 하였다

 

<헤이안 신궁>

'헤이안 신궁(平安神宮)'은 교토로 천도했던 간무 텐노와 교토에서 마지막으로 사망한 고메이 텐노를 모시는 신사이다 1895년 교토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의 황궁인 다이다이리(大內裏)의 일부를 복원했다 뒤편의 신엔(神苑) 정원이 아름답다

 

신궁(神宮)은 일본의 민속신앙인 신토(神道)의 신을 모시는 종교 시설이다 약 8만 개에서 30만 개까지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내선일체를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전범자들의 무덤이다

 

<교토고소>

'교토고소(京都御所)'는 헤이안 시대의 임시 궁궐에서 남북조 시대 이후 정식 궁궐이 되었다 고곤 텐노 때부터 메이지 텐노 때까지 약 550년 동안 일본의 텐노가 거주했다 화재로 소실되어 1855년 헤이안 양식으로 복원했다

 

남북 약 1,100m, 동서 약 600m의 부지에 남북으로 약 450m, 동서로 약 250m의 건축물이다 일 년에 봄과 가을 두 번만 일반에게 공개한다 쇼와 텐노는 교토고소에서 즉위식을 거행했고 아키히토 텐노는 도쿄 고쿄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나의일본여행기 #천년수도 #교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