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회영 특집 / 3 이회영의 여섯 형제)
이유승의 여섯 아들은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게 되자 ‘대대로 명문이라는 소리를 듣는 우리 가문이 일제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이어간다면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라고 통탄했다 전 재산을 처분하고 60여 명의 대가족이 만주로 망명했다
여섯 형제는 서울 저동(苧洞)의 99칸 저택을 제외하고 송곳 하나 꽂을 땅도 남겨주지 않고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자금으로 사용했다 전 재산을 처분한 금액은 당시 소 1,300마리 값인 40만 원으로 지금 6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첫째 이건영은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병환으로 사망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아들 이규훈은 독립운동을 하였고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 대위로 참전하였으나 실종됐다
둘째 이석영은 영의정을 역임한 이유원의 양자로 입적되어 물려받은 2만 섬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자금으로 보내고 영양실조로 사망하여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아들 이규준은 독립운동 단체 다물단에 가입하여 일제의 밀정인 김달하를 처단했다
셋째 이철영은 경학사를 조직하고 사장에 취임하여 황무지 개척사업을 벌였다 신흥강습소를 설치하여 애국청년들을 훈련시켰다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다가 병환으로 사망하여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넷째 이회영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석영의 아들인 조카 이규서의 밀고로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뤼순감옥에서 옥사하여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손자 이종찬은 국정원장을, 손자 이종걸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다섯째 이시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여섯 형제 중에 유일하게 해방이 될 때까지 살아남아 초대 부통령을 역임했다 이승만이 국민방위군 사건을 자행하자 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독재정권에 저항했다
여섯째 이호영은 일제의 밀정을 처단하기 위해 조직된 다물단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중국국민당으로부터 자금과 폭탄을 지원받아 다물단을 지원했다 1933년 독립운동 중에 일가족과 함께 행방불명 되었고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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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승의 여섯 아들은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게 되자 ‘대대로 명문이라는 소리를 듣는 우리 가문이 일제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이어간다면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라고 통탄했다 전 재산을 처분하고 60여 명의 대가족이 만주로 망명했다
여섯 형제는 서울 저동(苧洞)의 99칸 저택을 제외하고 송곳 하나 꽂을 땅도 남겨주지 않고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자금으로 사용했다 전 재산을 처분한 금액은 당시 소 1,300마리 값인 40만 원으로 지금 6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첫째 이건영은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병환으로 사망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아들 이규훈은 독립운동을 하였고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 대위로 참전하였으나 실종됐다
둘째 이석영은 영의정을 역임한 이유원의 양자로 입적되어 물려받은 2만 섬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자금으로 보내고 영양실조로 사망하여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아들 이규준은 독립운동 단체 다물단에 가입하여 일제의 밀정인 김달하를 처단했다
셋째 이철영은 경학사를 조직하고 사장에 취임하여 황무지 개척사업을 벌였다 신흥강습소를 설치하여 애국청년들을 훈련시켰다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다가 병환으로 사망하여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넷째 이회영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석영의 아들인 조카 이규서의 밀고로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뤼순감옥에서 옥사하여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손자 이종찬은 국정원장을, 손자 이종걸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다섯째 이시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여섯 형제 중에 유일하게 해방이 될 때까지 살아남아 초대 부통령을 역임했다 이승만이 국민방위군 사건을 자행하자 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독재정권에 저항했다
여섯째 이호영은 일제의 밀정을 처단하기 위해 조직된 다물단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중국국민당으로부터 자금과 폭탄을 지원받아 다물단을 지원했다 1933년 독립운동 중에 일가족과 함께 행방불명 되었고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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