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칠궁 특집 / 3 대빈궁)
‘대빈궁(大嬪宮)’은 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의 생모’인 장희빈을 모신 사당이다 경종이 즉위하여 장희빈을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하고 사당을 건립하여 ‘대빈궁’이라 불렀다 1908년 대빈궁을 궁정동의 칠궁으로 옮겼다
숙종은 7세에 세자가 되었고 14세에 왕이 되었다 45년 10개월 동안 재위하며 왕비 3명, 후궁 6명을 두었다 정비 인경왕후, 1계비 인현왕후, 2계비 인원왕후 등은 후사가 없었다 후궁 장희빈이 경종을 낳았고 후궁 숙빈최씨가 영조를 낳았다
장희빈의 본명은 장옥정이며 아버지는 역관이고 어머니는 노비라서 천민으로 성장했다 나인(內人)으로 궁궐에 들어가서 숙종의 승은을 받아 아들을 낳아 희빈이 되었다 조선에서 유일하게 궁녀에서 왕비까지 승진했다
숙종이 ‘경신환국’으로 남인을 축출하자 서인이 집권했다 다시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재집권하자 인현왕후가 폐위됐고 장희빈이 왕비가 되었다 또다시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인현왕후를 복위했고 장희빈은 폐비됐다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저주한 혐의로 사약을 받고 사사됐다 숙종은 ‘후궁이 왕비로 승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명했다 서인인 인현왕후와 남인인 장희빈은 당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숙종은 죽어서도 서인들의 등살에 의해 원비 인경왕후와 계비 인원왕후는 떨어진 곳에 묻혔고 계비 인현왕후와 나란히 묻혔다 후궁 장희빈은 경기도 광주에서 서오릉으로 천장했고 후궁 숙빈최씨는 경기도 파주에 묻혔다
경종은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로 태어나서 3세에 세자가 되었고 장희빈은 왕비가 되었다 임금이 되었으나 경종은 숙빈최씨의 아들이자 이복동생인 연잉군이 올린 음식을 먹고 생모에 이어 비극적인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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