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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4 영암의 시조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4 영암의 시조2)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방랑한 천재시인 김시습은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라고 남쪽 제일의 월출산을 노래했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팔도총론의 강원도 편에서 "지극히 말고 뛰어나 아침 하늘에 불덩이 별이 떠 있는 듯한 형세"라는 뜻으로 '극의청수 화승조천(極意淸秀 火星朝天)' 이라 월출산을 평했다. "영암의 월출산은 호남에서 가장 우뚝하여, 천고의 명산에 수많은 옥잠이 늘어섰는데. 손 뻗으면 금방 흰 구름에 닿을 만하여라, 바다 하늘에 화엄누각이 솟은 듯하구려."라고 매천 황현이 29세의 나이에 월출산을 방문하여 월출산을 칭송했다. "소소(蕭蕭)한 영암 벌에 결가부좌 그 기품. 달님..

카테고리 없음 2024.04.17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3 영암의 시조1)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3 영암의 시조1) "월출산의 많은 기이한 모습을 실컷 들었거니, 그늘지며 개고 추위와 더위가 서로 알맞도다. 푸른 낭떠러지와 자색의 골짜기에는 만 떨기가 솟고 첩첩한 산봉우리는 하늘을 뚫어 웅장하고 기이함을 자랑하누나. 하늘이 영험한 자라로 하여금 세 개의 섬을 짊어지고 지상으로 황홀하게 옮겨 놓게 했구나" 고려시대 벼슬하지 않고 핍박받던 백성의 고달픈 삶을 표현한 시인 김극기는 월출산을 예찬했다. "월출산(月出山) 높다더니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왕제일봉(天王第一峰)을 일시(一時)에 가리니, 두어라 헤퍼진 후면 안개 아니 거두리" 윤선도가 당쟁에 휘말려 경상도 영덕에서 유배살이가 끝나자 고향인 전라도 해남으로 가던 중에 산중신곡(山中新曲) 18수 가운데 하나인 조..

카테고리 없음 2024.04.16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2 영암의 가요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2 영암의 가요2) 월출산 신령님께 소원 빌었네 천왕봉 바라보며 사랑을 했네 금위로 돌아오마 떠난 그님을 오늘도 기다리는 낭주골 처녀 전순남은 영암군 군서면 출신으로 전 영암군수 전정식의 누이이자, 전 MBC 이환의 사장의 부인이다. '낭주골 처녀'는 용당에서 나룻배 타고 영산강을 건너 목포에서 서울로 떠난 낭군을 기다리는 애절한 노래이다. 낭주(朗州)는 낭주안남도호부(朗州安南都護府)가 설치됐던 영암의 옛 이름이다. 온동네 소문 났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 장가가던 날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더덩실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강진(康眞)은 영암군 시종면 출신으로 '땡벌', '화장을 지우는 여자' 등을 불렀고 월출산 남쪽의 강진군(康津郡)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막걸리 한잔은..

카테고리 없음 2024.04.15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1 영암의 가요1)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1 영암의 가요1)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하춘화는 전남 영암군 학산면 출신으로 7세로 가수로 데뷔하여 최연소 기네스북에 올랐다. 학사 3개, 석사 1개, 박사 1개로 학위를 5개 학위를 보유했고 가수 생활 40년 동안 약 200억가량을 기부했다. 물새 한마리, 영암 아리랑, 연포 아가씨, 날버린 남자, 나이아가라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아아아 아아아 마지막 한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김지평은 영암 덕진면 출신으로 교도관으로 재직하며 속을 알 수 없는 사형수들의 마음을 모티브로 ..

카테고리 없음 2024.04.14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권율 도원수)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권율 도원수) 행주대첩 진주대첩 한산대첩을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 한다 살수대첩 귀주대첩 행주대첩 한산대첩을 우리나라 4대 대첩이라 한다 칠천량 전투 쌍령전투 현리전투를 우리나라 3대 패전이라 한다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하고 한양으로 진격하여 벽제관에서 일본군이 치열한 교전 끝에 패배했다 명나라군은 평양으로 돌아갔고 왜군은 한양으로 돌아갔다 벽제관은 명나라 사신들이 의주에서 평양을 지나 한양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역관이다 권율은 전라도 순찰사로 임명되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으로부터 천자총통 등 신무기를 제공받아 행주산성에 웅거했다 권율은 부사령관 선거이, 의병장 김천일, 승병장 처영 등 9,000여 명이 30,000여 명의 왜군과 싸워 승리했다 도원수는 전쟁 시 임시로 부여되는..

카테고리 없음 2024.04.13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정난지변과 계유정난)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정난지변과 계유정난) 홍건적(紅巾賊)의 난은 백련교도 한산동이 미륵불을 자처하며 원나라의 차별정책에 반대하며 일으킨 농민반란이다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렀기 때문에 홍건적이라고 한다 한산동이 관군에 잡혀 살해되자 탁발승 주원장이 두목이 되었다 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하여 서경에 이어 개경이 함락하자 공민왕은 안동까지 몽진했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고려는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주원장은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건설하고 명태조가 되었다 명나라 초대 황제 주원장의 아들이자 태자인 주표가 사망하자 주원장의 손자이자 주윤문이 후계자로 지명됐다 주원장이 71세에 사망하자 주원장의 손자이자 주표의 아들인 주윤문이 2대 황제 건문제로 즉위했다 주원장의 아들이자 건문제의 숙부인 주체가 정난지변을 일으켜..

카테고리 없음 2024.04.1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연)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연)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皮千得)의 인연의 일부이다 6살과 10살에 부모를 차례로 보내고 경성제일고보와 상하이 후장대학(滬江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에서 영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했고 수필 ‘인연’과 ‘은전 한 닢’ 등을 남기고 96세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라는 말로 수필 인연이 시작된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라는 말로 수필 인연이 끝이난다 인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

카테고리 없음 2024.04.11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총선특집 / 5 제7공화국)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총선특집 / 5 제7공화국) 1948년 7월 17일 제헌의회에서 공포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명문화되었다 공화국(共和國)은 대통령이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대통령중심제’, 의회의 다수 의석 정당이 행정부를 책임지는 ‘의원내각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가 결합된 ‘이원집정부제’ 등이 있다 제헌헌법은 대통령 간선제와 1회에 한하여 중임을 허용했다 1차 발췌개헌, 2차 사사오입 개헌, 3차 제2공화국 헌법, 4차 소급입법 개헌, 5차 제3공화국 헌법, 6차 삼선개헌, 7차 유신헌법, 8차 제5공화국 헌법, 9차 제6공화국 헌법 등으로 개헌됐다 제1공화국 제3공화국..

카테고리 없음 2024.04.10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총선특집 / 4 광주시민의 선택)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총선특집 / 4 광주시민의 선택) 광주광역시에서는 1948년 5월 10일 제헌의회부터 2024년 4월 9일 22대 총선 직전까지 보궐선거를 제외하고 공식적인 총선에서 총 83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1988년 제13대 총선부터 광주광역시는 전라남도에서 분리됐다 광주광역시에서 지금까지 동안 당선된 국회의원의 정당별 정치성향으로 볼 때 보수정당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14명으로 17%를 차지하고 진보정당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69명으로 83%를 차지한다 무소속은 7%인 6명에 불과했다 또한 국회의원은 여당 소속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36명으로 43%를 차지하고 야당 소속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47명으로 57%를 차지했다 광주시민들은 진보정권이나 보수정권이나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

카테고리 없음 2024.04.09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총선특집 / 2 운동권 청산)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총선특집 / 2 운동권 청산) 일제강점기에는 절대다수가 먹고살기 위해 침묵하고 방관했고 소수의 뜻있는 사람들이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일부는 친일매국노가 되었다 해방이 되자 친일매국노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자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매국을 하며 3대가 흥한다' 라는 말까지 생겼다 1980년 초반과 중반의 저녁 아홉 시만 되면 '뚜 뚜 뚜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으로 시작되는 '전두환의 땡전 뉴스'가 유명했다 다음 뉴스는 '오늘 좌경용공 폭력세력이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폭력시위를 전개하여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라는 뉴스가 반복됐다 수많은 대학생 재야인사 선명야당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상상을 초월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권교체까지 이룩했다 오죽..

카테고리 없음 2024.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