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29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시인 조기천)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시인 조기천) 조기천은 1913년 소련 블라디보스토크 연해주에서 태어나서 조선사범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시베리아로 이주하여 옴스크의 고리키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중앙아시아에 있는 크슬오르다의 조선사범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 조기천은 해방이 되자 소련군의 일원으로 평양으로 들어왔다 조선어 신문을 발행했고 조선 시인과 소련 시인의 시를 조선어와 소련어로 번역하여 소개했다 1946년 조기천은 서사시 '두만강'을 발표해 문단에 등단했다 1947년 조기천이 발표한 장편 서사시 '백두산'은 박세영이 월북하여 1962년 발표한 '밀림의 역사'와 더불어 북한의 2대 걸작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참전했고 미군의 폭격을 받아 평양에서 사망했다 두만강 / 조기천 이 땅의 북변을 굽이..

카테고리 없음 2024.04.20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조선과 한사군)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조선과 한사군) 고조선은 한반도 북부와 중국의 랴오닝성 등에 걸쳐 존재했던 고대 국가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으로 구분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롯해 사기, 정사 삼국지, 한서, 후한서 등에 기록됐다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 단군조선은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한반도 최초로 건국했다 단군은 환인의 손자이자 환웅과 웅녀의 아들로 고조선 건국신화의 주인공이며 우리 민족의 시조이다 2333년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건국했다 위만조선은 기원전 194년 연나라에서 고조선으로 망명한 위만이 건국했다 위만은 한나라의 제후국인 연나라에서 망명하여 고조선의 준왕의 왕위를 찬탈하고 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의 왕위를 차지했다 전한 무제는 전한의 제7대..

카테고리 없음 2024.04.19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5 영암의 정자1)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5 영암의 정자1) 의식을 위한 공간, 거주를 위한 공간, 여흥을 위한 공간 등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있다. 전(殿)은 천자나 임금이 머물던 집으로 근정전, 교태전 등이다. 당(堂)은 터를 높이 돋우어 지은 집으로 녹우당, 환벽당 등이다. 헌(軒)은 개인의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명옥헌, 오죽헌 등이다. 재(齋)는 조용하고 은밀한 구조의 집으로 사의재, 산천재 등이다. 루(樓)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다락집으로 광한루, 경희루 등이다. 대(臺)는 터를 높이 쌓고 아래를 바라볼 수 있는 해운대, 을밀대 등이다. 원(園)은 큰집의 정원에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 죽녹원, 소쇄원 등이다. 사(祠)는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충장사, 포충사 등이다. 정(亭)은 경관이 수려한 곳에..

카테고리 없음 2024.04.18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4 영암의 시조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4 영암의 시조2)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방랑한 천재시인 김시습은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라고 남쪽 제일의 월출산을 노래했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팔도총론의 강원도 편에서 "지극히 말고 뛰어나 아침 하늘에 불덩이 별이 떠 있는 듯한 형세"라는 뜻으로 '극의청수 화승조천(極意淸秀 火星朝天)' 이라 월출산을 평했다. "영암의 월출산은 호남에서 가장 우뚝하여, 천고의 명산에 수많은 옥잠이 늘어섰는데. 손 뻗으면 금방 흰 구름에 닿을 만하여라, 바다 하늘에 화엄누각이 솟은 듯하구려."라고 매천 황현이 29세의 나이에 월출산을 방문하여 월출산을 칭송했다. "소소(蕭蕭)한 영암 벌에 결가부좌 그 기품. 달님..

카테고리 없음 2024.04.17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3 영암의 시조1)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3 영암의 시조1) "월출산의 많은 기이한 모습을 실컷 들었거니, 그늘지며 개고 추위와 더위가 서로 알맞도다. 푸른 낭떠러지와 자색의 골짜기에는 만 떨기가 솟고 첩첩한 산봉우리는 하늘을 뚫어 웅장하고 기이함을 자랑하누나. 하늘이 영험한 자라로 하여금 세 개의 섬을 짊어지고 지상으로 황홀하게 옮겨 놓게 했구나" 고려시대 벼슬하지 않고 핍박받던 백성의 고달픈 삶을 표현한 시인 김극기는 월출산을 예찬했다. "월출산(月出山) 높다더니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왕제일봉(天王第一峰)을 일시(一時)에 가리니, 두어라 헤퍼진 후면 안개 아니 거두리" 윤선도가 당쟁에 휘말려 경상도 영덕에서 유배살이가 끝나자 고향인 전라도 해남으로 가던 중에 산중신곡(山中新曲) 18수 가운데 하나인 조..

카테고리 없음 2024.04.16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2 영암의 가요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2 영암의 가요2) 월출산 신령님께 소원 빌었네 천왕봉 바라보며 사랑을 했네 금위로 돌아오마 떠난 그님을 오늘도 기다리는 낭주골 처녀 전순남은 영암군 군서면 출신으로 전 영암군수 전정식의 누이이자, 전 MBC 이환의 사장의 부인이다. '낭주골 처녀'는 용당에서 나룻배 타고 영산강을 건너 목포에서 서울로 떠난 낭군을 기다리는 애절한 노래이다. 낭주(朗州)는 낭주안남도호부(朗州安南都護府)가 설치됐던 영암의 옛 이름이다. 온동네 소문 났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 장가가던 날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더덩실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강진(康眞)은 영암군 시종면 출신으로 '땡벌', '화장을 지우는 여자' 등을 불렀고 월출산 남쪽의 강진군(康津郡)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막걸리 한잔은..

카테고리 없음 2024.04.15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1 영암의 가요1)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1 영암의 가요1)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하춘화는 전남 영암군 학산면 출신으로 7세로 가수로 데뷔하여 최연소 기네스북에 올랐다. 학사 3개, 석사 1개, 박사 1개로 학위를 5개 학위를 보유했고 가수 생활 40년 동안 약 200억가량을 기부했다. 물새 한마리, 영암 아리랑, 연포 아가씨, 날버린 남자, 나이아가라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아아아 아아아 마지막 한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김지평은 영암 덕진면 출신으로 교도관으로 재직하며 속을 알 수 없는 사형수들의 마음을 모티브로 ..

카테고리 없음 2024.04.14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권율 도원수)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권율 도원수) 행주대첩 진주대첩 한산대첩을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 한다 살수대첩 귀주대첩 행주대첩 한산대첩을 우리나라 4대 대첩이라 한다 칠천량 전투 쌍령전투 현리전투를 우리나라 3대 패전이라 한다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하고 한양으로 진격하여 벽제관에서 일본군이 치열한 교전 끝에 패배했다 명나라군은 평양으로 돌아갔고 왜군은 한양으로 돌아갔다 벽제관은 명나라 사신들이 의주에서 평양을 지나 한양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역관이다 권율은 전라도 순찰사로 임명되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으로부터 천자총통 등 신무기를 제공받아 행주산성에 웅거했다 권율은 부사령관 선거이, 의병장 김천일, 승병장 처영 등 9,000여 명이 30,000여 명의 왜군과 싸워 승리했다 도원수는 전쟁 시 임시로 부여되는..

카테고리 없음 2024.04.13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정난지변과 계유정난)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정난지변과 계유정난) 홍건적(紅巾賊)의 난은 백련교도 한산동이 미륵불을 자처하며 원나라의 차별정책에 반대하며 일으킨 농민반란이다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렀기 때문에 홍건적이라고 한다 한산동이 관군에 잡혀 살해되자 탁발승 주원장이 두목이 되었다 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하여 서경에 이어 개경이 함락하자 공민왕은 안동까지 몽진했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고려는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주원장은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건설하고 명태조가 되었다 명나라 초대 황제 주원장의 아들이자 태자인 주표가 사망하자 주원장의 손자이자 주윤문이 후계자로 지명됐다 주원장이 71세에 사망하자 주원장의 손자이자 주표의 아들인 주윤문이 2대 황제 건문제로 즉위했다 주원장의 아들이자 건문제의 숙부인 주체가 정난지변을 일으켜..

카테고리 없음 2024.04.1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연)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연)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皮千得)의 인연의 일부이다 6살과 10살에 부모를 차례로 보내고 경성제일고보와 상하이 후장대학(滬江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에서 영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했고 수필 ‘인연’과 ‘은전 한 닢’ 등을 남기고 96세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라는 말로 수필 인연이 시작된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라는 말로 수필 인연이 끝이난다 인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

카테고리 없음 2024.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