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28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백제특집 / 1 백제 건국)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백제특집 / 1 백제 건국) 온조(溫祚)는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東明聖王) 주몽의 아들이다 온조는 이복형 유리가 고구려의 태자로 책봉되자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어머니 소서노와 동복형 비류를 이끌고 남쪽으로 망명했다 유리는 고구려 2대 유리명왕으로 즉위했다 비류(沸流)는 주몽의 아들이자 온조의 동복형으로 온조와 결별하고 미추홀에 터를 잡고 비류국(沸流國)을 건국했다 미추홀이 바다 근처라서 땅이 습기가 많고 물이 짜서 편하게 살 수 없어 비류가 자살하자 신하들이 위례성으로 옮겼다 온조는 한강 유역의 하북위례성을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라고 하였다 온조는 비류의 신하들을 받아들여 나라 이름을 백제(百濟)로 고쳤다 온조는 46년간 재위하며 말갈족과 낙랑군의 침략을 막아..

카테고리 없음 2024.02.18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주괘서사건)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주괘서사건) 현종이 즉위하여 예송논쟁이 일어나서 왕권이 추락하고 신권이 강화됐다 숙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경술환국으로 서인정권을, 다시 기사환국으로 남인정권을, 또다시 갑술환국으로 서인정권을 수립하는 세 차례의 환국정치를 단행했다 정권을 장악한 서인들은 송시열을 중심으로 남인에 과격한 처벌을 주장하는 노론과 윤증을 중심으로 남인에 온건한 처벌을 주장하는 소론이 대립했다 소론의 지원을 받아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즉위하자 노론은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했다 김일경은 과거에 3번이나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으로 승진하여 세자를 가르쳤다 세자가 경종으로 즉위하자 정2품 형조판서로 승진하여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주장하던 이이명 김창집 이건명 조태채 등 노론 4대신을 숙청하는 신임옥사를 주관..

카테고리 없음 2024.02.17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소호정의 추억)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소호정의 추억) 대박산(大朴山)은 은적산의 중앙에 있는 봉우리로 과거시험에 급제한 선비가 관모를 쓰고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는 산봉우리이다. 대박산을 관봉(冠峰), 관대봉(冠大峰), 간대바위 등으로 불렸다. 대박산에서 바라보면 동쪽으로 월출산의 월출이 황홀하고, 서쪽으로 유달산의 일몰이 아름답다. 추석이 되면 산골정 형제들은 소호정에서 모여 함께 대박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키웠다. 소호정(蘇湖亭)은 1612년 서희서가 산골정 마을 입구에 지은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단층 구조이다. 소호정은 뒤에는 대박산, 앞에는 서호강의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에 자리했다. 좌의정 이정귀, 예조판서 신흠, 형조판서 이안눌, 암행어사 신명규 등이 소호정에 들려 경치를 극찬하고 시..

카테고리 없음 2024.02.16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북한여행 특집 / 10 음식)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북한여행 특집 / 10 음식) 북한 음식은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등 북한 지역에서 유래한 요리를 말한다 실향민이나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요리를 전파했다 북한 요리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으며 값싸고 소박한 요리가 많다 북한에서는 소는 도살이 금지되어 공급이 부족하고 돼지는 사료 부족으로 인해 사육이 어려워 쇠고기와 돼지고기 요리는 발달하지 않았다 대신 염소 토끼 닭 꿩 등 초식동물이나 명태 가자미 잉어 숭어 등 물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북한에서는 쌀이 부족하기 때문에 밀이나 감자 옥수수 등을 이용한 음식이 발달했다 또한 서양의 영향을 적게 받아 단고기 식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하며 개국장 수육 볶음 꼬치 개엿 냉체 등 다양하다 '냉면'은 겨울날 온돌에서 즐..

카테고리 없음 2024.02.15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북한여행 특집 / 9 국화)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북한여행 특집 / 9 국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ᄯᅢ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藥山 진달내ᄭᅩᆺ 아름ᄯᅡ다 가실길에 ᄲᅮ리우리다 가시는거름거름 노힌그ᄭᅩᆺ츨 삽분히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ᄯᅢ에는 죽어도아니 눈물흘니우리다 1922년 7월 개벽(開闢) 통권 제25호(6월호)에 개여울, 고적한 날에, 제비, 장별리 등과 함께 실린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다 1925년 12월 26일 매문사에서 발행한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됐다 잡지 개벽은 천도교에서 조선인의 계몽을 위하여 1920년 6월 25일 창간한 잡지이다 창간호는 호랑이 그림 표지를 문제 삼아 일제에 압수됐다 1926년 8월 1일 통권 제72호(8월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됐고 속간을 포함하여 통권 8..

카테고리 없음 2024.02.14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북한여행 특집 / 8 함흥본궁)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북한여행 특집 / 8 함흥본궁) 양계(兩界)는 고려 시대에 평안도의 서계와 함경도의 동계의 두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북방의 이민족 침입이 잦아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지역으로 병마사를 파견했다 고려 중기에 양계 체제가 무너졌고 공양왕 때 서북면과 동북면으로 개칭했다 동북면은 고조선의 영토에 한나라가 현도군을 설치했다 한나라를 몰아내고 옥저(沃沮)가 차지했다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였고 남북국 시대에는 발해의 영토였다 고려의 북진정책으로 동북면을 회복했다 원나라는 1231년 다루가치를 파견하고 동북면을 감독했고 1258년 조휘의 반란으로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여 통치했다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 증조부 이행리, 조부 이춘, 생부 이자춘 등이 다루가치를 세습하며 동북면을 다스렸다 충렬왕..

카테고리 없음 2024.02.13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북한여행 특집 / 7 고도개성)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북한여행 특집 / 7 고도개성) 폐허가 된 개성을 왕평이 작사하고 전수린이 작곡하여 이애리수가 노래한 '황성옛터'이다 개성(開城)은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건국한 고려의 500년 도읍지였고 개경(開京), 송악(松岳), 송도(松都) 등으로 불렸고 예성강 하구에 위치한 벽란도는 국제항구로 발전했다 개성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했고 정종이 다시 개성으로 환도했다 또다시 태종 이방원이 한양으로 천도했다 남한의 영토에는 한국전쟁으로 북한의 영토가 되었다 개성직할시가 폐지되고 황해북도로 편입되어 특급시(特級市)가 되었다 개성은 북쪽에는 천마산과 박연폭포가 있고 남쪽에는 진봉산과 용수산이 있다 중앙에 송악산 기숡에 고려 왕궁터인 만월대가 있다 특히 소나무가 많아 송도(松都)라고 불렀다 ..

카테고리 없음 2024.02.1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북한여행 특집 / 6 수도평양)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북한여행 특집 / 6 수도평양) 야인초가 작사하여 한복남이 작곡했고 손인호가 노래한 '한 많은 대동강'이다 평양은 고조선의 도읍지이자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이며 북한의 수도이다 1948년 제정된 북한 헌법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수부(首府)는 서울시이다'라고 규정했다 1972년 개정한 북한 헌법에 '평양은 혁명의 수도'라고 규정했다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의 안학궁(安鶴宮)과 대성산성(大城山城)으로 천도했다 평상시의 궁성인 안학궁과 전시에 방어를 담당하는 산성인 대성산성의 2중 구조이다 안학궁은 140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였고 지금은 궁궐터만 남아났다 고구려 평원왕이 궁성과 산성을 결합한 장안성(長安城)으로 천도했다 평양성 외성 안에는 평민들이 살았고, 중성 안에는 귀족들이 살..

카테고리 없음 2024.02.11

[역사 속 전라도] 전라도 음식 특집④ 남원 추어탕과 류자광

[역사 속 전라도] 전라도 음식 특집④ 남원 추어탕과 류자광 서일환 언론학박사·행복한요양병원 본부장 남원(南原)은 마한 54국 중 하나인 고립국(古臘國)에 속했고 백제와 가야, 백제와 신라가 교대로 점령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정복하여 신라에 병합했고 신문왕이 백제의 옛땅을 통치하기 위해 남원경(南原京)을 설치했다. 고려 현종이 5도 양계로 개편하며 강남도와 해양도를 전라도(全羅道)로 통합했다. 전라도는 전주와 남원의 전남도(全南道), 전주와 광주의 전광도(光南道)로 개칭되기도 하였다. 남원시(南原市)는 전북특별자치도 동남부에 있는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남원도호부(南原都護府)와 운봉현(雲峯縣)이 통합됐고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된 도농복합형태의 시이다. 중앙으로 요천(蓼川), 서남쪽에는 섬진강이 흐른다. ..

카테고리 없음 2024.02.10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내 고향, 산골정)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내 고향, 산골정) 서홍필(徐弘弼)은 서숙명의 손자이자 서희신과 서희서의 생부이다. 단종 복위로 사건으로 도피해온 노종주의 증손인 노극제의 딸과 혼인하여 처향인 영암군 서호에 입향하여 산골정에 정착했다. 산골정은 동북쪽으로 서호강이 흐르고 남서쪽으로 은적산이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산화철의 일종이 산골이 생산되어 산골정이라고 한다. 산골정은 산골이 아니라 오히려 바닷가 마을이다. 서희신(徐希信)은 서홍필의 아들이자 서희서의 형으로 생원시와 식년시에 합격하고 종6품 찰방에 재임 중에 선조에게 상수리 열매가 굶주린 백성에게 요긴하다는 상소를 올려 도토리 구제법을 시행하게 하였다. 서희신은 정4품 단양군수에서 은퇴하고 공명폐사가(功名獘屣歌)를 남겼다. 서희서(徐希恕)는 서홍필의 아들이..

카테고리 없음 2024.02.09